나의 이야기

개신교와 정치

또랑i 2016. 4. 25. 18:35
 
인구센서스(인구주택총조사)는 5년마다 이뤄져도 ‘종교별 인구’는 매번 조사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 종교별 인구 조사는 2005년에 있었다. 이 조사에서 자신의 종교를 ‘개신교’라 답한 이는 861만6천명이었다. 직전 조사인 1995년에 견줘 1.4%가 줄었다. 사상 첫 감소였다. 앞선 시기 무서운 성장세와 확연히 대비됐다. 천주교 인구수는 같은 시기 외려 4.3% 늘었다. 개신교는 충격에 빠졌다. 정병준 서울장신대 교수가 ‘해방 이후 한국개신교회 성장 및 감소’에서 정리한 수치를 보면, 1960년 62만3천명(인구의 2.5%)이었던 개신교 신도 수는 1970년 인구의 10%가 넘는 319만2600명으로 급증했다. 이어 1980년 14.3%(533만7천명)로, 다시 1995년 19.7%(876만300명)까지 늘었다. 이런 성장세가 처음으로 꺾였다. 위기감이 분출했다.

“같은 시기 민주화로 인해 사회적·정치적 주권의식에 대한 감수성이 고도화된 반면, 개신교 목사에 대한 신뢰는 급락했다. 교회는 구태의연한 이들의 모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에 관한 추문들이 공개되기 시작했고, 민주화를 더 많이 추구했던 이들이 교회에서 먼저 철수했다.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은 붕괴했고 교회는 급속도로 보수화됐다. 미국과 북한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민주화된 시민사회와의 괴리를 더 넓혀 놓았다. 또 소비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여가산업이 발달하면서 교회 출석률이 낮아졌고….”(<시민 K, 교회를 나가다> 235쪽)

신도 수만 줄어든 게 아니었다. 교회 수도 감소했다. 대형 교회는 건재해도 중소형 교회는 무너졌다.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폐업한 교회의 수는 해마다 1300개 이상으로 추산됐다. 교회가 줄자 신학생들의 취업도 힘들어졌다. 거대 교단 중 하나인 예수교장로회 통합 쪽 교단 신학교인 장신대학교의 2008년도 졸업생들은 13%만 교회에 취업했다. 취업이 어려워 신학생들 관심이 ‘교회성장학’에 기울었다. 교회도 ‘생존’에 뛰어난 신임 목사를 선호했다. 신학적 소양보다 실용적 활용이 중요했다. 목사들이 정당을 만들어 국회에 들어가려는 배경에 이런 교계 내 위기의식이 작용했다고, 김진호 연구실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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