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있던 삼한(三韓) 중 가장 큰 정치 집단으로, 54개 소국의 통칭이다. 마한은 서해에 접하고, 동쪽은 진한(辰韓), 남쪽은 변한(弁韓)에 접해 있었다. 한강 이남 서울남동부를 중심으로 했던 나라 등 54개국의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마한의 54개 부족국가는 지금의 경기도·충청북도·충청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에 해당하며, 그 외에도 강원도 서부와 황해도 남부까지 세력권으로 하였다.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동이전(東夷傳)에는 마한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小國)의 명칭이 열거돼 있다.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였다고 한다.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것은 ‘읍차(邑借)’라고 하였다.
마한의 전체 호수(戶數)는 10여만 호였으며,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특히, 목지국(目支國)은 진국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삼한시대에도 목지국의 왕은 진왕(辰王)이라 일컬어 마한과 진한 여러 나라의 맹주대접을 받았으며, 삼한의 초기에는 그 세력이 진한과 변한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진한과 변한은 총 호수가 4~5만인데, 큰 나라는 4~5천 호였고, 작은 나라는 6~7백 호에 지나지 않았다. 이 중 북방에서 이주해온 부여족(扶餘族)계통인 온조(溫祚)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제국(伯濟國)이 마한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했고 4세기 중엽(백제 근초고왕 재위기)이 마한 연맹체를 통일했다.
마한은 기원 후 8년에 온조왕이 다스리는 백제에 병합되었고, 9년에 멸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21년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현토성과 요동 공격에 마한의 군사를 동원한 기록도 있다. 이는 온조왕 때에 백제가 마한의 부족국가 연맹체를 해체·흡수한 것이 아니라 목지국을 대체할 연맹체 내의 우두머리 국가로 부상하였고, 한반도 북쪽에도 마한의 세력이 미쳤음을 추정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