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택배업체인 현대로지스틱스는 올초 택배운송비를 건당 최소 500원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택배기사와 협력업체의 운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500원 인상안은 아직도 계획에 머물고 있다. 치열한 단가 경쟁 속에서 거꾸로 값을 올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말 인터넷에서 주문한 책 배달을 전문으로 하던 이노지스는 가격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다.
○과당경쟁이 부른 파업

업체 난립→과당 경쟁→수수료 하락→회사와 택배기사 수익성 악화의 패턴이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게 택배업의 현실이다. 2004년 증차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불법영업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운송 거부도 따지고 보면 열악해진 영업환경의 결과물이다. 지난달 대한통운과 CJ GLS가 통합하면서 880~950원이던 건당 배송 수수료가 800~820원으로 떨어져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게 택배기사들의 주장이다. ‘통합 수수료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합병 전 두 회사의 수수료 산정 기준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적으로 표준화된 수수료율 산정 방식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이는 택배 수요 증가에도 불구,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기존 택배회사의 증차는 금지시키되 신규업체는 신고만 하면 영업할 수 있게 돼있다. 이에 따라 개인용달차 등과 불법적으로 계약한 부실 업체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과당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1997년 건당 4000원(기업·개인물량 평균)이던 택배 가격은 지난해 2460원으로 15년째 추락했다. 미국(건당 1만원), 일본(7000원)은 물론 건당 3300원인 중국에도 못 미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산업으로 분류되지 못해 산업용이 아닌 비싼 가정용 전기를 써야 하는 게 택배회사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시장 규모와 수입 반비례

국내 택배시장 규모는 작년 3조5200억원으로 추산된다. 3년 전 2조7000억원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TV홈쇼핑, 온라인쇼핑 시장의 성장과 함께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택배물량의 95%를 차지하는 기업물건 운송료는 작년 1㎏ 이하 상자당 2200원 수준. 이 중 집화(해당 회사에 가서 발송 물건을 받아오는 것)기사는 수수료로 330원, 배송기사는 수수료로 880원을 받는다. 기름값과 보험료, 통신비, 차량 할부금 등을 빼고 나면 배송기사가 쥐는 돈은 670원가량이다. 물론 대리점을 통해 계약한 기사들은 중간 수수료를 또 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택배기사는 하루 평균 13시간 동안 110개의 상품을 배달한다. 한 달에 25일을 일해도 수입이 18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회사의 수익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기사 수수료 외에 각종 비용 920원(상하차 비용, 터미널 운영비) 등을 빼면 영업이익은 70원(3.2%) 정도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택배이용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과당경쟁으로 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택배 이용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단체 등과 함께 운영하는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따르면 택배서비스 불만접수는 2010년 9905건에서 지난해 1만660건으로 증가했다.

2010년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 2011년 민주당 최규성 의원은 택배법 제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국 발의도 못하고 무산됐다.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차이가 커서 법안 작성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게 송 의원 측 이야기다. 택배회사와 전문가들은 △택배차량 증차 △외국인 노동자 고용 허가 △택배품질 서비스평가 △표준수수료제 도입 △택배산업 육성 등을 담은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2004년 정부가 파업 중이던 화물연대와 화물차량을 늘리지 않기로 합의한 뒤 금지한 택배회사의 증차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택배회사들은 시장의 수요는 늘어나는데 차를 늘리지 못해 영업용 차량의 번호판을 구입하는 편법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용달협회 등 개인사업자들은 택배법 제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증차가 허용될 경우 화물차를 소유한 개인택배 사업자들의 일거리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용달협회는 대표적 강성노동단체인 화물연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도 미온적이긴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큰 틀에서 택배법 제정을 통해 택배가 산업으로 육성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사업자들과의 이해관계 조정을 우선해야 하고 소비자들의 택배이용료 증가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 일본의 경우 1983년 ‘택배운임 인가기준’을 제정, 택배업을 소화물 운송업으로 지정했다. 국토교통성의 허가를 받은 사업자만이 인가받은 운임에 따라 택배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다. 운송비는 정기적으로 국토교통성에 신고한 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도 2008년 ‘택배시장 관리방법’이라는 법률을 제정했다. 중국 역시 업체별 규모와 조건에 따라 취급 물품 및 지역 범위를 정하는 방식의 ‘경영허가제’를 시행해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97년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하면서 허가제를 폐지하고 신고제로 전환했다. 운임이나 화물의 중량·부피 등도 완전 자율화했다. 영세업체나 개인사업자에게 도급을 주는 ‘다단계 구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