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정해진다’. 교과서적인 말이다. 수급 펀더멘털로만 값이 결정되면 뭘 걱정하겠나. 현실에선 다른 변수가 많다. 기름값이 그렇게 움직인다. 기본적인 수급사정에 비해 너무 오르곤 한다.
도대체 이 기름값은 누가 정하나.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까지는 메이저들이 했다. ‘세븐 시스터스’로 불리던 엑손, 모빌, 걸프, 텍사코, 셰브론, BP, 셸이 그들이다.
이에 대항한 게 석유수출국기구(OPEC)였다. OPEC는 1970년대 들어 ‘석유권익의 국영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70년 배럴당 1~2달러였던 원유값은 71년 2달러20센트, 73년엔 3달러30센트로 올랐다. 그러다 제4차 중동전쟁 직후 석유수출 제한과 동시에 OPEC는 원유값을 4배로 인상했다. 곧장 배럴당 12달러대 시대가 왔다. 이로써 가격 결정권은 메이저에서 OPEC로 넘어갔다.
그러나 OPEC의 시대도 오래 못 갔다. 79년 이란혁명과 80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이번엔 비(非)OPEC 산유국들이 생산을 늘렸다. 북해 유전을 보유한 영국이 대표적인 나라다. OPEC의 입지는 점차 약해졌다. 80년대 후반 OPEC는 자신들이 주도하던 공식 판매가격 제도를 포기하고 만다. 가격 결정권을 시장에 넘긴 것이다.
석유의 시장화는 83년 서부텍사스유(WTI)가 뉴욕선물거래소에 상장되면서 가속화됐다. 거의 동시에 북해 브렌트유의 선물(先物)도 런던 국제석유거래소에 상장됐다. 석유가 주식이나 외환처럼 금융적 투자 판단에 따라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생산단가나 수급을 고려한 펀더멘털한 기름값은 얼마쯤일까. 전문가들은 배럴당 30~40달러라고 본다. 엑손과 셸도 2003년 유전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원유값을 그렇게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이게 40~50달러로 높아졌다지만, 실제 유가의 절반도 안 된다.
그렇다면 2008년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했던 원유가는 도대체 뭔가. 아무리 중국 같은 신흥국의 수요가 늘었다지만 이것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더 설득력 있는 건 투기설이다. 이는 WTI의 거래량에서 잘 나타난다. WTI의 하루 생산량은 40만 배럴에 불과하다. 그런데 선물시장에선 무려 1억~2억 배럴이 거래된다. 엄청난 판돈이 걸린 도박판 비슷했다.
그 돈은 누가 댔나. 산유국의 국부펀드나 미국 연금·기금들이다. 이를 투자은행들이 맡아 굴렸다. 워싱턴 포스트는 당시 이렇게 보도했다. “원유 선물계약의 81%는 금융회사의 것이다. 2008년 7월 말 4개 투자은행이 선물계약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다.” 배럴당 140달러는 결국 투기자본이라는 마물(魔物)이 석유를 인질로 잡고 부른 몸값이었다.
석유는 이처럼 시황 상품이 된 지 오래다. 3차 오일쇼크는 투기자본이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어떻게든 에너지자급률을 높여 투기자본의 놀음에 놀아나지 말아야할텐데, 현재 에너지자급률을 높일수있는 확실한 방법은 원자력이 유일하다. 신재생에너지는 먼 훗날 얘기다.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촉발된 방사능위험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무시할수도 없고, 국제 투기자본의 놀음에 놀아날수도 없고..딜레마도 보통 딜레마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