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잠깐! 반찬에 그 젓가락 대지 마세요"

또랑i 2020. 4. 2. 09:47

모든 음식이 커다란 상 하나에 차려져 나오는 '공간 전개형 상차림'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 전통 잔치 상차림은 독상(獨床) 차림이었다. 궁궐에서 열렸던 각종 연회를 기록한 그림을 보면 모든 참석자 앞에 각종 음식이 1인분씩 담긴 소반이 하나씩 놓여 있다.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커다란 교자상에 음식을 모두 담아 내는 한정식(韓定食)은 1900년대 초 '명월관(明月館)'에서 유행시켰다. 명월관은 우리나라 최초 조선 요리점.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宮內府)에서 잔치와 여기 필요한 기구를 관리하던 주임관(奏任官) 안순환이 1909년쯤 서울 광화문 지금의 동아일보사 자리에 문을 열었다. 명월관은 '임금이 자시는 음식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며 대단한 화제가 됐고, 명월관에서 규격화한 한정식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한식 서빙의 전범(典範)으로 굳어졌다. 이것이 요즘 한국의 공유형 상차림이 됐으니, 그 역사가 길어봐야 110여 년에 불과한 것이다.

한식 상차림이 공유형으로 바뀐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거의 같은 시기 유럽에서 나타났다. 과거 프랑스에서는 요즘 국내 한정식집처럼 여러 요리를 한 상에 차려 냈다. 이를 '프랑스식(式) 서비스'라고 한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잔치일수록 이런 상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다 1890년대 음식이 순서대로 1인분씩 제공되는 '러시아식 서비스'로 바뀌었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러시아에서 음식이 식어 맛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식사 제공 방식. 이것이 프랑스에서 유행하면서 러시아식 서비스가 서양 고급 레스토랑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전통이란 건 의외로 오래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이며, 쉽게 사라지거나 바뀌기도 한다. 코로나처럼 엄청난 재난 앞에서 상차림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게 바뀔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1/20200401055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