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좌우명을 내건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이 재정위기를 계기로 휘청거리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유럽에 좌파 정부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속속 도입됐던 복지 정책들은 탄탄한 경제력 덕분에 각국의 모델이 됐지만 고령화하는 인구 구성과 정체된 성장으로 세수가 줄고 지출은 늘면서 국가 재정이 흔들리고 복지정책 자체도 위협받고 있다.
인구는 고령화하고 출산율은 떨어지며 공장들은 아시아로 옮겨가 고실업률에 허덕이는 유럽에 이제 복지정책 변화는 권장사항이 아닌 절체절명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유럽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50년까지 2배 가까이 급증할 전망이다. 1950년대에는 경제활동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50년이 되면 1.3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각종 통계지표들은 유럽 복지정책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U의 총 공공사회복지지출은 1980년 국내총생산(GDP)의 16%에서 2005년 21%로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 2005년 복지지출이 15.9%를 기록하는데 그쳐 대조를 이루고 있다.
복지정책을 가장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야 할 곳은 유로권 2위 경제국인 프랑스다. 유럽에서 복지지출 비중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현재 GDP의 31% 수준이며 이 가운데 국민연금이 전체 복지지출의 44%를 넘고 의료보장에 30%가 지출된다.
독일의 경우 1963년 이후 출생자의 법적 은퇴 시기가 65세에서 67세로 높아졌지만 인구 절반이 50세 이상인 프랑스는 여전히 60세면 은퇴해 국민연금을 받는다.
2050년까지 연금을 받는 고령인구는 47% 증가할 전망이지만 이들의 연금을 대야 할 경제활동인구는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110억유로 적자를 안고 있는 프랑스 국민연금은 국가재정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상태가 이어지면 2050년 국민연금 적자는 1030억유로로 2050년 추정 GDP의 2.6%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국민연금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커다란 국민적 반대에 부닥쳐 있는 상황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 대다수는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원론에는 동의했지만 응답자의 60%가 은퇴 시기 연장이 답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복지정책 개혁의 필요성은 유럽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연금 개혁 없이 유럽의 복지모델은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며 프랑스도 결국 스웨덴과 독일처럼 국민연금 수령 연령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유로권에 가입하며 유럽식 사회복지 모델을 도입했던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은 국민의 기대치만 높여 놓은 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디폴트 위험에 놓인 그리스는 앞으로 3년간 연금을 동결하고 은퇴 시기도 65세로 높이기로 했다. 또 공무원 급여를 동결하고 2개월치 급여를 주던 보너스도 삭감키로 했다.
포르투갈은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의 급여를 5% 삭감하고 세금은 높이는 한편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잇따라 취소했다.
스페인도 공무원 임금을 5% 삭감하고 2011년까지 임금을 현 수준에서 동결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3개국의 이 같은 재정긴축은 여전히 적자를 메우기에 부족하고 경쟁력과 성장세를 회복하려면 높은 실업률을 야기하는 경직된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 더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