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황 악화에 선제적 여신관리
前분기보다 대출 8300억 줄여
신규대출 깐깐…사실상 중단
구조조정 대상 1년새 5→16곳
1차 협력사가 대부분…충격 커
연말 2·3차 협력사 확산 우려
채권銀 공동채무관리 검토도
조선·해운업 위기때와는 달리
영세업체 줄도산땐 손 못쓸판
국내 자동차 부품 1차 협력사 851곳 가운데 대구 경북 경남 지역에만 238개가 몰려 있다. 경기도 지역(184곳)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부실이 심화하면 지역 경제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지역 금융계 시각이다. 자동차산업 쇼크가 가시화하면서 금융권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중소 부품업계 몰락이 현실화하면 32조원에 달하는 관련 업종 은행권 부채가 상환 불능이 되는 최악의 상황도 우려된다. 급기야 일부 은행은 은행권 차원에서 부품업체에 대한 공동 채무관리에 돌입하는 것을 검토했다.
30일 한국은행 산업별 대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이 `자동차 및 트레일러` 업체에 빌려준 대출 잔액은 지난 2분기 32조5289억원에 달한다. 직전 2개 분기가 각각 33조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감소 추세다. 업황이 악화되자 이미 지난해부터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여신 관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제조업 대출 342조원 중 32조원은 10% 남짓으로 비중이 크지 않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금융권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현장에 가보면 군산뿐만 아니라 대구도 자동차 관련 업종 분위기가 매우 안 좋은 상황"이라며 "그간 버티던 기업들도 이제 한계가 왔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도 대출 건전성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이 보는 부품업계 분위기는 심각하다. 자동차 업종 협력업체 부도율은 현재 4.4% 수준으로 전체 중소기업 부도율 3.2%를 훌쩍 뛰어넘는다. 연체율도 증가 조짐을 보인다. 완성차로부터 직접 주문을 받는 1차 협력업체보다는 2·3차 협력업체의 위기가 더 심각하다.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3분기 자동차 업체 연체율이 처음으로 전체 여신 평균을 웃도는 이례적인 상황에 접어들었다"며 "여신 관리를 보다 세밀하게 할 것을 일선 지점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B부품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인근 공단 1차 협력사 가운데 2·3차 협력사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금융권 연체에 들어간 곳이 상당수"라며 "당장 숫자로 집계되지는 않겠지만 연말로 갈수록 금융권 연체율이 급격히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차 부품업체 위기는 단순히 부품업종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유관 산업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며 "다른 대출로도 위기가 퍼질 수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일부 은행은 채무 기업에 대한 공동관리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C은행 고위 임원은 "우리가 주의 깊게 보는 구조조정 대상 D기업만 해도 채권을 관리하는 은행이 3곳에 달한다"며 "기업이 부실하다고 해서 특정 은행이 먼저 채권을 회수할 수 없도록 공동 관리장치를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조선·해운업 부실 당시 채권 은행 한 곳이 여신 상환에 나서자 다른 은행도 앞다퉈 뛰어들면서 결국 기업이 위기에 빠졌던 도미노 현상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질서 있는 퇴장`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자동차 업종에 대한 은행들의 신규 대출도 사실상 중단됐다. 기업이 재무제표만 제출하면 자동으로 계산했던 신용등급도 이제는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서 매기고 있다. 경북 지역 E은행 지점장은 "신용등급 평가 시 향후 투자 계획과 미래사업 계획 등을 꼼꼼히 따지고 있다"며 "최근에만 신용등급을 소폭이나마 낮춘 곳이 3~4곳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 판단하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숫자도 늘어났다. 금융감독원 신용위험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업종별 숫자는 전년 대비 2개 줄어든 174개에 그친 반면 자동차 업종은 지난해 16개로 전년(5개)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국내 자동차 업종에서 1차 협력사 숫자는 800여 곳, 2·3차는 8000여 곳에 달한다. 전체 숫자를 보면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숫자가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2·3차 협력사를 여럿 거느린 1차 협력사에 해당한다. 올해 말 발표 때는 숫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 신용위험평가는 50억원 이상 여신을 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데, 3차 협력사들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하지 않아 통계에 마땅한 대응 방안도 없다.
은행들이 기울이는 노력도 상황이 더 악화되면 좀처럼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동 관리가 대표적이다. 대기업 구조조정과 달리 영세 업체들은 수가 너무 많아 도산할 경우 채권단을 조율할 중재자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불과 3년 전 조선·해운업 부실 사태 때 채권 회수를 누가 빨리 하느냐가 결국 은행의 순이익 순위를 정했다는 시각도 있다"며 "그때 크게 데었던 은행으로선 선제적·보수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에서는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지만 은행과 다른 고객들 안정성까지 고려하면 구조적 침체가 가시화한 상황에서 무작정 대출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승훈 기자 / 이승윤 기자 / 정주원 기자]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678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