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율주행차 보행자 사고에도 문책·규제 대신 안전보완 뒤 운행
일 터지면 문책하는 우리와 달라
대통령도 규제개혁 하자는데… ‘기업 퍼주기’ 정의롭지 않다고?
명분 집착하다 혁신이 죽는다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프게 채혈을 해야 하는 아이가 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잴 수 있는 기기를 수입했다. 스마트폰용 앱까지 스스로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 주었지만 결국 관련 규제를 위반한 사람이 되었다. 지난달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 발표 행사에서 대통령은 이 사례를 들면서 분노했고, 신기술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앨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통령이 직접 지적했으니 아마 이 문제는 즉시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보는 많은 사람은 데자뷔를 느낀다. 그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들은 계속 분노했고, 분노한 즉시 그 사안은 해결되었지만 다른 규제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신기술은 계속 사장(死藏)되어 갔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기술이나 제품을 원천봉쇄하지 못한 규제 담당자에게 계속 책임을 물어왔기 때문이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욕을 먹든 말든 아예 아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불허하거나 사실상 위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규제를 강하게 해두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이런 체제하에서 관료의 복지부동을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연히 대통령이 특정 사안을 콕 집어 분노해주면 오히려 다행이다. 최소한 그 건에 대해서만은 면책이 되니 바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서 모든 규제 사안마다 허용 여부를 판정해줘야 하는 생태계에서 기술 혁신은 숨 쉴 수 없다.
우선 용어부터 고쳐야 한다. ‘규제철폐’가 아니라 ‘규제진화’다. 사람이 벌거벗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듯이 기술도 사회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제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규제를 없앤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신기술일수록 규제를 더 빨리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때까지 알려진 정보를 바탕으로 일단 제도를 만들어 신기술을 시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게 될 텐데, 그때마다 규제를 고쳐 나가면 된다.
아이가 크면서 조금씩 더 큰 옷을 갈아입히듯 규제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과정이다. 이 규제진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질 사람을 찾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 정신으로 조금씩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건강한 기술-규제 진화 생태계가 형성되어야 담당자가 안심하고 혁신친화적인 규제도 만들고, 적극적인 유권해석도 하게 된다.
법령에 열거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아니라 열거된 것 빼고는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만들자는 주장도 잘 해석해야 한다. 허용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가는 전혀 핵심이 아니다. 일단 시도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불문법적인 절차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