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권리 우선 판결에 기업 年 6조4천억원 부담
현대차 현지 협력사 직원 "해고자 정신적 피해도 보상"
지역별 사설 근로감독청 운영비까지 사업주가 부담
세계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7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정치이념이 포퓰리즘이다. 남미를 비롯해 서유럽까지 포퓰리즘 논란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중을 위한다'고 포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통치자의 집권 연장 야욕과 부메랑을 보지 못하고 단기적 시야에 매몰된 대중이 함께 엮어낸 결과다.
지역적으로는 남미에서 유럽까지, 정파적으로는 좌파에서 우파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포퓰리즘의 본모습이 적나라하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잘나가던 의류기업 사장 박명옥 씨(53)는 지난 7월 사업을 접었다. 한때 코리아타운에서 최대 의류매장을 운영하며 사원 100명을 거느렸지만 '노동 소송 공화국'인 브라질에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11월 29일(현지시간) 코리아타운 식당에서 만난 박씨는 좌파 정권에 대한 성토부터 쏟아냈다. 그는 "원자재값보다 몇 배나 비싼 노동 소송 비용으로 한 해 수십만 달러를 쏟아붓다 보니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며 "결국 실익 없는 사업을 접는 게 능사라고 판단했다"고 폐업 결정을 설명했다.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였던 그는 현재 한국인 관광객 및 정부기관의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끊이지 않는 소송의 덫에 휘말렸던 것에 비해 행복하다"고 진저리를 쳤다.
브라질은 한 해 노동 소송 건수만 500만건에 달하는 세계 최대 노동 소송 국가다. 3억명이 채 안 되는 인구 규모에 비하면 과도한 수준이다. 해고자 중 90%가 무조건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한다. 현지 근로자 1만8000명을 보유한 폭스바겐은 지난해 3만건 넘는 노동 소송을 치렀다. 국책은행인 방쿠두브라지우와 카이샤에코노미카페데라우, 시중은행인 브라데스쿠와 이타우-우니방쿠 등 5대 은행의 노동 소송 건수는 13만건에 달한다. 2015년 민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노동 소송 때문에 부담한 비용은 174억헤알(약 6조4000억원)로 추산된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일제히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소송을 통해 법적 구제를 받으려는 근로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1988년 노동법이 개정된 이후 2003년 당선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정부가 노동자 편향적인 판결을 강제하면서부터 노동 관련 소송은 급속히 늘었다. 기업은 해고자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당한 해고에도 해고자는 5년 내 갖가지 사유로 기업을 상대로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송 비용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패소할 때 불리할 수 있지만 소송을 제기하면 100% 승소가 확실한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해고자는 물론 해고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에게는 노동 전문 변호사들이 접근해 소송을 부추기기도 한다.
7세 때 이민을 가 현지 대학을 졸업한 후 현대자동차 관련 하도급 사업체에서 2년간 근무했던 최승현 씨(28)는 노동 소송에 치를 떨었다. 최씨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았다"면서도 "2년간 소송으로 인해 회사 측 대리인으로 거의 매일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는 게 진절머리가 났다"고 퇴사 배경을 설명했다. 최씨는 "심지어 해고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국 패소해 할 말이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브라질 노동법은 사업주보다 노동자 권리를 우선한다. △근로자의 목표 미달 및 실적 부진 공표 △직무 박탈 및 배제 △과도한 연장 근무 △휴식시간 불허 등 법에 규정된 사항만으로도 기업은 소송에 휘말리고 100% 패소한다. 특히 종업원과 그 가족에 대한 명예 훼손 등 불분명한 조항 때문에 사업주는 상시적으로 소송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상시적인 파업을 무기로 사업주 위에 군림했다. 노조와는 별도로 지역별로 존재하는 사설 근로감독청 운영비도 사업주들이 의무적으로 갹출한다. 여기에 노조 전임자가 아닌 사업장별 대표 근로위원이 있다. 근로위원에게는 의무적으로 1년간 근무를 강제하지 못한다. 근로위원 재임 시 해태를 명목으로 이후에도 해고할 수 없다. 그야말로 노동자들 천국인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것으로 유명한 이 노동법은 1988년 제정됐기 때문에 좌파 정권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룰라 전 대통령과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노동법을 준수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불합리한 노동 관행을 외면하고 노조에 힘을 실어준 것은 분명 이들 정권 책임이라고 성토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정권의 힘을 노조에 이양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상파울루 현지 대형 로펌의 클레버 벤디티 다시우바 변호사는 룰라와 호세프 정권의 복지부동이 잘못된 근로 환경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업을 죽이고 노동자만 살리는 정책으로 일관한 좌파 정권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