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IGS 위기는 '빙산의 일각'일 뿐…
국가채무·버블 등 곳곳에 악재…
'양대 축' 美·中 경제도 불확실 여전…
금리인상 앞서 경제 안정 기다려야…
과거 경제·금융위기는 멕시코나 태국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서구 금융시장의 심장부에서 문제가 터졌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의 금융위기는 이제 2010년에 접어들면서 국가채무 문제로 바뀌고 있다.
유로존, 중국, 미국 등 세계 주요 경제 모두 근심거리를 안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제 회복의 강도, 국가부채 문제의 심각성, 출구전략의 시행 등이 세계 경제의 진로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스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12조달러 규모의 유로존 경제에서 그리스의 비중은 3%에 지나지 않는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는 그리스의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유럽의 병자'로 통하는 영국까지도 곤경에 처할 수 있다.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 국가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유로존 전역과 그 너머로 전염되느냐도 주된 걱정거리다. 이미 외환 딜러들과 헤지펀드가 유로화의 가치에 연타를 가했다. 유럽연합(EU)은 도입된 지 11년 된 유로화 통화 시스템이 더 이상의 손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스를 원조, EU 회원국이 파산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것임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모든 구제금융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70%가 낭비적인 그리스 국민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데 반대한다. 프랑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리스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지원 프로그램도 엄격하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재정 긴축 프로그램을 동반할 것이다.
모럴 해저드도 문제다. 그리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포르투갈, 스페인, 심지어는 이탈리아에도 자국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허리띠를 졸라맬 유인이 없을 것이다. 유로존의 다른 국가들이 손쉬운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해준다는데, 긴축의 고통을 감내할 리 만무하다.
독일의 한 신문은 "그리스는 속임수를 쓰고 사기를 쳤으며 사치스럽게 생활했다.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추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가혹하게 굴 것을 염려해 그리스의 많은 노동조합이 전국 규모의 파업에 돌입했다. 고통이 심해진다면 일부 국가들은 유로존을 탈퇴, 자국 통화 체제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또는 잃어버린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자국 통화 체제로의 복귀는 매우 까다롭고 골치 아픈 일이다. 유로존을 탈퇴하는 국가들이 보유한 유로화 표시 채무는 디폴트(채무불이행)될 가능성도 있다. 통화 변동성이 다시 높아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문제 국가들의 통화로 거래하기 꺼리면서 금리가 상승할 것이다.
투자자들이 안전한 투자처를 찾고 있을 때, 문제 국가들은 자신들의 높은 부채 수준과 변변치 못한 거시경제운용 때문에 국제신용시장에서 외면당할 것이다.
금융시장 무법자들의 다음 목표물은 동유럽, 인도, 필리핀 등이 될 수 있다. 일본과 미국조차도 투기꾼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로존의 위기가 한풀 꺾이고 나면, 세계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경제가 어떤 둔화 조짐이라도 보인다면 이는 전 세계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중국 경기부양책의 초석은 은행 대출이다. 통화 공급량과 대출 모두 빠른 속도로 팽창했고 그중 많은 부분이 사회기반시설과 부동산 건설에 투자됐다.
은행 대출의 급격한 증가는 버블 우려를 부추겼다. 지난 1월 중국 은행들의 대출은 2030억달러 증가했는데, 이는 그전 3개월간 늘어난 대출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주택 가격은 연간 20% 이상 상승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일본식 버블 위험에 처해 있다고 걱정하고, 그 때문에 정책 결정자들은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비록 중국 당국은 올해 예정대로 신규 대출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올 들어 이미 2번이나 은행들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높였다.
중국 정부가 점차 경기부양책을 줄이는 가운데 중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려면, 민간 부문이 그 빈틈을 메워야 한다. 불행하게도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약세를 걱정하면서 돈 풀기를 꺼리고 있다.
이 경우 중국 정부는 2가지 선택의 길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나는 버블이 커지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될 느린 경제 성장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경우라도 중국 경제는 곳곳에 장애물이 있는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 경제도 세계 경제에 있어 '지브롤터의 암벽' 같은 든든한 존재가 아니다. 미국 경제는 작년 4분기에 연율 기준으로 5.7%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경제는 산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전보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일자리는 여전히 줄어들고 있고 고용 상황이 단번에 회복되리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민간소비도 걱정했던 수준보다는 낫지만 경기에 활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주택 문제도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유로존과 중국, 미국의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언제 그리고 어떻게 출구전략을 시행할 것인가가 세계 경제의 진로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문제다.
전 세계 정책 결정자들은 1937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1997년 일본처럼 세금을 올리는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중앙은행들은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금리 인상에 앞서 세계 경제가 확실히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