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6년.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12월 19일. 전군표 국세청장이 기자실로 들어서 머리를 숙였다. "참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시작된 종합부동산세 신고 실적이 97.7%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국민의 성숙한 납세의식에 감사드립니다."
# 종부세 결정판이라 할 8·31 대책 출발점은 이보다 1년 반 앞선 2005년 6월 17일이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선 당·정·청 고위 관계자들이 배석한 부동산정책대책회의가 열렸다. 김병준 정책실장 한마디에 사실상 `집값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거 못 하면 우리 다 나라에 죄짓는 거다. 책임지자. 이거 못 하면 우리 다 뛰어내리자…."
전쟁 지휘관들이 비장한 `출사표`를 던지던 날. 서울 시내 모처에선 전쟁터에 총 들고 나서는 각 부처 1급들 회의가 열렸다. 당시 건설교통부의 모 국장은 며칠 뒤 기자와의 티타임 자리에서 "회의 끝나고 청와대에서 종합부동산세 부과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갖고 오라고 해 들고 갔는데 기대했던 자료가 아니라 엄청 깨지고 왔다. 내일 또다시 깨지러 가야 한다"고 털어놨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국세청장이 당연한 납세의무를 지킨 국민에게 절까지 올렸을까. 각 부처 정책설계자들은 왜 매일 청와대 닦달에 시달렸을까.
`집값과의 전쟁` 총사령관인 노 전 대통령이 매일 쏟아낸 발언은 `대첩` 분위기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강남 재건축 투기꾼들이 언제까지 웃을까 보겠다" "일부 언론과 부동산 부자들이 정책을 훼방한다". 참여정부 초중반은 중국의 급성장, 한국의 수출 호황, 덩치 커진 복지예산의 시기였다. 유동성이 증가하면 자산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수출 호황으로 뭉칫돈이 넘쳐나고 새 정부는 복지예산,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유동성을 퍼붓고 있는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어떤 정책책임자들도 입바른 소리를 못 했다. 총사령관이 강남 재건축을 `적폐 주범`으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유효 사거리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징벌적 과세탄두들이 쏟아졌던 이유다. 종부세만 하더라도 시행 초기에 했던 대로 개인별 합산 방식을 지키고 가구별 합산이라는 `무리수`만 두지 않았으면 위헌 판결까진 가지 않았을 거다. "단박에 집값 잡자"던 목소리 큰 강경론자들이 밀어붙였다. 8·2 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재건축=투기꾼` 프레임을 일단 씌워놓고 투기를 막겠다며 조합원 지위(분양권) 양도를 금지시켰다. 거래 가능 매물이 자취를 감추자 잠실주공5단지나 은마아파트 등과 같은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한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널뛰는 게 지금 결과다.
정책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대가 센 누군가가 또 말했다. "집값은 그렇게 못 잡는다. 단박에 쇠뿔 뽑듯이 잡아야 한다."
[이지용 부동산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