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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하기 어려운 건 지배구조 탓도 크다

또랑i 2017. 11. 20. 14:34

왜곡된 기업 지배구조 때문에 국민 사이에 反기업 정서 퍼져 잘못도 모두 총수 탓이 돼버려
회사법 따라 경영 참여하거나 전문경영인 감시 제대로 하며 성과 내는 선진국 본받아야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내 100대 그룹의 오너 가족은 입사 후 평균 약 4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한다고 한다. 오너 일가의 채용과 승진, 그리고 자녀의 기업 경영권 승계가 당연하다는 인식도 일반화되어 있다. 재벌 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그렇다. 기업 가치보다는 오너 패밀리의 이익이 우선인 기업도 많고 오너 패밀리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기업 임원도 아주 많다.

회사법을 보면 기업 경영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사가 하게 되어 있고 주주는 주총에서 이사를 선임하거나 주주 제안을 하는 등 주총을 통해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사가 아닌 한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것이 회사법의 근간이다. 지주회사라고 하더라도 계열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다. 지주회사도 주주로서의 지위를 가질 뿐, 이사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많은 기업이나 그룹의 경우 총수 혹은 오너라고 불리는 대주주가 이사의 지위에 있지 않음에도 사실상 기업을 통치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다. 회사법 체제에 어긋나고 권한에 상응한 책임도 지지 않는 구조이며 종종 회사 가치보다 오너 패밀리 이익을 우선하는 경영도 한다.

이런 왜곡된 지배 구조는 심각한 폐해를 야기하고 있다. 첫째, 국민은 오너 패밀리 이익 중심의 왜곡된 지배 구조를 좋아하지 않는다. 국민의 반()기업 정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심한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유별나게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왜곡된 지배 구조를 묵인해주고 그 대신 주변 규제를 강화해 왔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지주회사 규제 등 공정거래 관련 규제도 많고 금산분리와 관련된 규제 등도 유독 우리나라에 많다. 상속세율도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지배 구조가 올바르다면 구태여 도입할 필요가 없는 규제들이다. 더 나아가 공정거래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규제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셋째, 기업 경영에 오너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의 삼성 롯데 등 일부 그룹 총수들의 수난도 왜곡된 지배 구조 탓이 크다.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총수의 잘못이라고 주장해도 변명하기 어려운 지배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 여파로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했지만 이는 환경 변화에 따라 왜곡된 지배 구조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시그널로 보아야 한다. 회사법과 어긋나고, 반기업 정서를 야기하고, 정부의 기업 규제를 촉발하는 지배 구조는 그동안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었고 그 누적된 부담이 최순실 사태로 분출되었다고 할 것이다.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 해체를 발표한 지난 2월28일, 미래전략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의 한 출입문에 '닫혔음(closed)'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뉴시스

어떻게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가. 선진국의 경영학 교과서를 보면 참고할 만한 단서가 있다. 경영진을 적극적으로 감시하는 대주주가 있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성과가 좋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경영한다.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지 못하게 외부감사인, 사외이사 등 여러 감시 장치를 두는데 이 중 대주주의 감시가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지배 구조의 예를 생각해보자. 같은 그룹 소속 회사들이 모여 느슨한 연합체를 만든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할 방법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 협력 방법을 실행할 것인지는 개별 회사의 경영진이 하게 한다. 대주주는 소유한 지분을 관리하는 별도의 조직, 즉 '패밀리 오피스'를 그룹 외부에 둔다. 대주주 자신은 느슨한 연합체의 의장이 될 수도 있고, 외부에 존재하는 패밀리 오피스에서는 기업과 경영진을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경영진에 의견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이사의 선임 등 주총 안건에 대해서는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대주주 자신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싶은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의 이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지배 구조는 회사법 체제와 어긋나지 않는다. 권한과 책임도 괴리되지 않는다. 경영에 참여하려면 이사의 지위를 가지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경영진을 감시하는 대주주 역할을 충실히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국민의 반기업 정서와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 대해 불평한다.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한다. 지만 자신들이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제 기업들도 자신에 주어진 숙제를 해야 한다. 지배 구조를 올바르게 고쳐야 한다. 오너 패밀리 이익 중심의 지배 구조가 정말로 객관성 원칙이 지켜지는 새로운 지배 구조로 바뀌어야 그동안 강화되어온 주변 규제들도 완화될 수 있고, 상속세율도 선진국 수준으로 하향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9/20171119021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