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퇴하면 60일 안에 차기 대통령 선출해야
당선 즉시 5년 임기 시작…정권 인수 절차 없어
정당들 대선 후보 선출 어려워 정치적 혼란 불가피
박 대통령, 거국중립내각 수용 땐 ‘식물 대통령’
당선 즉시 5년 임기 시작…정권 인수 절차 없어
정당들 대선 후보 선출 어려워 정치적 혼란 불가피
박 대통령, 거국중립내각 수용 땐 ‘식물 대통령’
“저는 오늘로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었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실제 상황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11월25일 국회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다가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잘못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들이 웅성거리자 곧바로 실수를 깨닫고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제가 실수했습니다. 제가 거기를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한 뒤 “국회의원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바로잡았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실수는 가벼운 웃음거리였습니다. ‘박근혜도 저런 실수를 하는구나’라고 좋게 본 사람들이 오히려 많았습니다. 4년이 흘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가 이제는 정치 현실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2014년 말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폭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경질 보도는 최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최순실 사태’의 전조나 빙산의 일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은 거꾸로 국기문란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 무렵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인사들이 있었습니다. 2007년 경선과 2012년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특별한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정’으로 미루어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그들의 예감이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0월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립니다. 학생들을 시작으로 각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유출과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하여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십시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강직한 분을 국무총리로 임명하여 국무총리에게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십시오. 거국중립내각으로 하여금 내각 본연의 역할을 다하게 하고, 거국중립내각의 법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검찰 수사를 지휘하게 하십시오. 대통령이 그 길을 선택하신다면 야당도 협조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표류하는 국정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최후의 방안입니다.” 대통령직 사퇴는 하지 말되 황교안 국무총리는 퇴진시키고 여야가 함께 구성하는 거국중립내각으로 권력을 넘기라는 제의입니다. 대통령의 사퇴로 인한 여러가지 정치적 혼란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야말로 ‘식물 대통령’이 됩니다. 자존심이 강한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문재인 전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성격상 남은 임기를 ‘식물 대통령’으로 보내는 굴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하야’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의 통화에서 ‘심사숙고’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습니다. 아직은 사퇴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거취를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상황으로 급속히 밀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온국민의 좌절과 분노가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민심은 지금 분노와 불안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박근혜와 최순실 두 사람이 초래한 헌정문란 사태는 2016년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일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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