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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부터 베고 검찰을 베라

또랑i 2019. 10. 9. 09:59

국민정서법으론 이미 유죄

검찰 개혁이 조국 보호막 안돼

문재인 정치의 복원도 시급

지지층 아니라 전 국민 보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친문 쪽은 조국 사태를 언론 참사로 몰아가고 있다. 근거 없는 과잉보도로 조국 법무장관 가족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 사회에선 진실이 무엇인지 판명 난 지 오래. 지난달 24일 기자협회가 이달의 기자상에 한국일보·동아일보 기사를 뽑은 게 그 상징적 장면이다. 한국일보는 조국 딸, 두 번 낙제하고도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 받았다고 첫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그 다음날 고교 때 2주 인턴 조국 딸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라는 특혜 의혹을 보도했다.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 특종으로 공식 인정 받은 것이다. 최순실 사태 때 태블릿 PC를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길거리에선 조국 구속조국 수호의 구호가 맞부딪히지만 국민정서법 상 조 장관은 이미 유죄다. 다음은 지난 칼럼에 달린 댓글이다. “우리 서민들은 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공직자와 그 가족들이 우리보다 좀 더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양심과 수치를 아는 사람이어서 존경받는 자들이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가 국민을 화나게 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서적으로 조 장관 일가의 특권과 반칙에 크게 실망한 것이다.


서초동 집회에 대한 분석은 진보 신문들이 더 예리하다. 정국의 향배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조 장관의 도덕성에 실망해 의견 표출을 꺼리던 범여권 지지층이 검찰 개혁이란 명분이 나오자 적극 행동에 나선 것이라거나 이번 싸움에서 밀릴 경우 문 대통령이 후폭풍을 직접 맞을 수도 있다는 범여권 지지층의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조국 구하기프레임은 오히려 검찰 개혁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지금 검찰이 청와대와 맞짱 뜨는 풍경을 그대로 믿는 것은 순진하다. 불과 석 달 전 한 진보신문의 칼럼은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수부장)은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들이다. 그 연줄로 최고 실세로 군림하는 이는 내가 노무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유일한 검사잖아’, ‘세월호 사건 수사하느라 (당시 정권의 외압 때문에) 고생했지만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며 호가호위에 공치사를 한다는 소문이 서초동에 자자하다고 썼다. 그 검찰이 지금의 검찰이다. 단지 조 장관의 비리를 어디까지 수사할지를 놓고 청와대와 입장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서초동 집회에서 왜 특수부 검사 20명이나 달라붙어 한 가족을 탈탈 터느냐고 따지는 것은 단세포적이다. 거꾸로 왜 그렇게 많은 검사를 투입해야 할 만큼 조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이 쏟아지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왜 걸핏하면 해외로 도피하고 컴퓨터 하드를 바꾸는 등 증거인멸과 훼손을 일삼는지 따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가 뒤늦게 검찰 개혁을 들고나온 것도 염치없다. 지난 2년간 적폐 청산 과정에서 검찰과 밀월을 즐겼다. 진보진영이 처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은 지난해 12월 말 검찰이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을 수사하고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조사하면서부터다. 진보 매체들은 일제히 지금 검찰개혁 못 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촛불 시민들이 검찰을 우리 편으로 여기는 것은 큰일이라고 채찍을 꺼냈다. 하지만 이런 호들갑도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검사들이 모두 쫓겨나면서 잠잠해졌다. 집권 세력이 그렇게 묻어버린 불씨를 조국 수사가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윤 총장과 교감해온 한 전직 검찰총장은 전했다. 윤 총장은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는 저돌적으로 치받지만 참모들의 합리적 건의는 따르는 스타일이다. 이번 건도 대검 참모들이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수사 대상이라고 의견을 모으자 내가 책임지겠다며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는 윤 총장은 이번 수사를 검사로서 마지막 책무로 여기는 모양이라고 했다. 이미 마음을 비운 분위기다.


청와대는 여전히 사법절차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시간은 이미 돌아가는 중이다. 두 달째 조국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은 피로감과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시라도 바삐 조 장관을 베고 그 다음에 검찰을 베는 게 제대로 된 수순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치의 복원도 시급하다. 한때 큰 울림을 주던 정치적 리더십이 32.4%(한국리서치)로 추락한 지지율처럼 어느새 형편없이 왜소해져 버렸다. 그제 대통령이 국론분열이 아니라 국민의 뜻은 검찰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라 서둘러 결론내려 버린 것도 마찬가지다. 전체 국민 대신 지지층만 바라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참고했으면 하는 연설이 있다. “우리 민주당에는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애국자, 그리고 이라크전을 찬성하는 애국자입니다.” 이렇게 미국의 오바마는 반대진영의 애국심까지 끌어안았다. 몇달 뒤 그와 맞선 공화당의 존 매케인도 큰 정치가였다. 그는 한 여성 지지자가 흑인인 오바마가 당선되는 게 두렵다고 하자 이렇게 다독였다. “오바마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훌륭한 미국 시민이며 안심해도 좋습니다. 저와 몇 가지 사안에서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이철호 칼럼] 조국부터 베고 검찰을 베라


https://news.joins.com/article/23598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