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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扶餘,夫餘

또랑i 2019. 7. 24. 15:16

부여(扶餘,夫餘, 기원전 11세기 ~ 494년)는 한국의 고대국가인 초기 국가(연맹 왕국)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만주 일대(하얼빈아청위수눙안창춘솽양지린옌지훈춘치치하얼룽장)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부여는 멸망하였다.

단군조선이 기원전 194년에 멸망으로 해체되면서 여러 부여족 계열의 나라가 세워졌는데 부여족이 세운 나라로 해모수(解慕漱)가 세운「북부여(北夫餘)」와 해부루와 금와(金蛙)가 세운 「동부여(東夫餘)」그리고 추모왕(주몽)이 세운 「졸본부여(卒本夫餘)」로 알려져 있다.

부여를 건국한 인물은 고리국에서 나온 동명왕이다. 기원전 3세기부터 494년까지 700년 이상 존속한 예맥계 부여족(夫餘族)의 부족 국가로서, 일명 북부여라고도 한다. 부여의 영토는 지금의 창춘 시 이퉁강 유역을 중심으로 솽양과 남쪽으로는 랴오닝 성, 북쪽으로는 아무르 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


부여란 명칭은 (神明)에서 유래하여 개발(開發)->자만(滋蔓)->평야(平野)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로 변하였다는 설과 《자치통감》의 “初,夫餘居於鹿山,”(처음에 부여는 녹산에 자리잡았다.)라는 기술에서의 “鹿山”과 사슴[鹿]을 만주어에서 Puhu, 몽골어에서 буга(buga)라고 하는 것을 근거로 夫餘를 사슴의 뜻을 가졌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벌’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부여의 세력권 (3세기경)


졸본부여는 고구려의 전신 국가이거나 고구려의 별칭일 것이다. 그리고 이 때의 졸본부여는 고주몽이 건국한 기원전 37년의 고구려 이전에 많은 문헌에서 등장하는 고구려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졸본부여라는 이름은 고구려가 부여계의 국가임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남부여(南夫餘)는 백제 성왕이 새롭게 지정한 국호이다. 이 국호나 건국 신화, 무덤 양식 등을 보면 백제는 부여로부터 갈라져 나왔고 그를 오래도록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