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와 극단행동
200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10년 동안 4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OECD 회원국 중 10년 동안 자살자 수가 급증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우울증 조울증 등으로 진료받은 환자도 2년만에 48% 증가했고,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은 사람도 4년 동안 2배 이상 늘었다. 한국인의 정신 상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이며 '정신 건강 후진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한국 사회에서는 '평범한 이웃'들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일탈해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범죄 전력이 없던 '소시민'이 홧김에 살인이나 폭행 등 크고 작은 사건을 저질러 언론에 곧잘 보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평범하고 열심히 살던 사회 구성원이 갑자기 일탈을 감행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적 위주의 끊임없는 경쟁에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우리 사회는 전쟁터가 됐다. 여기에 연일 쏟아지는 사건사고 보도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의심하고 분노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적 압박감과 개인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멀쩡했던 사람의 정신 건강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이 수면 위의 거센 파도라면, 우리 사회의 뚜렷한 상하관계와 권위적인 문화는 기저에 흐르는 압박 요인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2/3가 '정체성 폐쇄군'에 속하는데, 정체성 폐쇄군은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끼면 타인을 비난하거나 분노를 과격하게 표출하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한국인은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집단적 목표 성취를 강조해 온 우리 사회의 수십년 특성 때문에 자아정체감을 성숙시키지 못했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정서적으로는 '미성년자의 사회'"에 머물러있다고 볼수있다.
사회 분위기만 탓할 것도 아니다. 한국인은 신체 건강을 꼼꼼히 챙기는 것에 비해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는 무관심하다. 스트레스는 상담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개선된다. 현재 대부분의 보건소가 스트레스 상담실을 운영하기 때문에 굳이 정신과를 찾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 강남구 정신보건센터의 스트레스상담실 이용자는 방문·전화·온라인을 합쳐 하루 평균 6~7명에 그친다. 1회성이 아닌 정기적인 상담을 받는 사람은 이 중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불안정한 정신 건강 상태=정신병'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고집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를 키운다. 감정을 드러내면 나약하게 여기고, 정신 건강에 신경쓰면 무조건 정신질환자 취급하는 사회분위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게해 만성적으로 누적됐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실제 정신질환이나 자살·범죄 행위 등으로 폭발하게 한다.
"외상후격분장애"란 해고·이혼·파산·펀드 손실·가까운 이의 사망·불치병 진단 등 충격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감정을 3개월 이상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다가 결국 방화 자살 폭력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증후군이다. 외상후격분장애는 무엇이 원인인지 확실하지 않은 화병(火病)과 달리, 뚜렷한 원인이 있다. 토지보상비 문제로 속을 끓이다가 숭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이 대표적 사례인데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
산에 올라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억울한 심정을 글로 써 보면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거나 스트레스를 담아두지 말고 술자리에서 원인 제공자의 흉을 보거나 노래방에서 감정을 터뜨리는거나 하는것들이 이 증후군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