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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의 위기

또랑i 2010. 5. 16. 10:16

유로가 탄생한 1999년 독일 등 유로존 북유럽 국가들이 ‘유로 시스템 변화’를 추진했다. 독일 등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3% 이내에서 억제하지 못한 나라를 제재하거나 축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프랑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재정적자 3%를 지킬 수 있는 곳은 3~4개 나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 남유럽 진영은 이른바 독일의 개혁이 ‘콜의 원칙’에서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콜의 원칙은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이 91년 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기준을 말한다. 그는 “가능한 한 가장 많은 나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유럽 리더들이 ‘재정적자 3% 룰’만을 제정했을 뿐 강제 제재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이유다. 그 시절 즉, 1991년 희망에 들뜬 유럽 리더들은 일부 나라가 재정적자 3% 룰을 어기더라도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결국 유로는 불완전한 모태에서 잉태된 셈이었다. 통화가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인 재정 건전성이 유로존 회원국의 선의에 내맡겨진 꼴이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초 ECB(유럽중앙은행)는 그리스 등의 국채 매입에 뛰어들었다. ECB의 국채 매입은 기본적으로 금지된 일이다. EU가 유럽중앙은행법을 만들며 물가안정을 유일한 의무로 규정하고 회원국 국채 매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일반 채권시장(유통시장)에서 국채 매입까지는 막지 않았다. ECB의 자체 포트폴리오 조정을 배려한 조항이다.

 

ECB는 지난 한 주에만 300억 유로어치 정도를 매입했다. 유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통화가치 수호자라는 ECB의 위상과 유로화의 신뢰성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주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폴 볼커(83)의 입에서 천기누설에 가까운 말이 흘러나왔다. 유로존 해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미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장 자격으로 14일 런던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그는 “여러분은 유로존이 해체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해체 경고는 몇 차례 있었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경제학), 상품투자의 귀재인 미국의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 등이 볼커에 앞서 유로존 해체나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등을 예상했다. 하지만 볼커의 중량감은 달랐다. 그는 교수나 금융시장 플레이어가 아니다. 미 중앙은행 수장을 지낸 인물이다. 12년 전 독일이 제기했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최근 시장에서는 유로존 국가들이 조성한 구제금융 약 1조 달러도 그다지 미덥지 않다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트리셰의 국채 매입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유로 가치 하락을 촉발시켰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유로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양상이다. 그리스 등이 재정적자를 바로잡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지만, ‘긴축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남유럽 경제가 ‘긴축→경기침체→디플레→부채 부담 증가’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정부의 지출 감소로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물가가 하락하게 된다는 진단이다. 그러면 실질 금리 부담이 커지면 남유럽 국가들이 짊어지고 있는 빚의 부담이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본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주 말 발표된 스페인의 올 4월 근원 물가지수(Core CPI)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긴축의 악순환에 대한 두려움이 일면서 미국과 유럽 주가가 미끄러져 내렸다. 시장이 ECB의 의지와 힘을 뛰어넘어 움직이기 시작한 듯하다.

 

재정긴축의 부작용이 커지면 정치·사회적 갈등도 불거진다. 갈등은 남유럽의 정치 리더들을 선택의 기로에 몰아넣을 수 있다. 그들은 경제 체력보다 고평가돼 수출과 경기회복을 제약하는 유로 대신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유로존 탈퇴나 유로화가 아닌 B급 화폐 발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