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가격 치솟는 3가지 이유
2008년 금융위기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원자재 값이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2009년 2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구리는 150%, 원유는 140%, 알루미늄은 90%씩 올랐다.
경기 회복 국면에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50년 이후 있었던 6차례 경기 하강기의 경우 경기가 바닥을 찍고 18개월 후까지 원자재 가격은 평균 5% 올랐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폭은 33%에 달한다. V자 반등인 셈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해 투자은행과 분석기관들이 내놓는 설명은 세 갈래다.
▲금융위기 기간 중에 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가 중단돼 재고가 부족해졌다는 점(공급 부족)
▲중국등 신흥시장 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점(수요 상승)
▲원자재 보유 국가와 기업들의 파워게임(정치적 요인)
국내외 전문가들은 올 연말까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 쟁점은 지금의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2008년 최고점을 넘을 것인가, 그래서 2003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 계속됐던 원자재 수퍼사이클(commodities super-cycle·가격의 장기 상승) 단계에 재진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통상 경기 침체 직후에는 원자재 재고율이 높다. 하지만 이번 경제 위기에서는 이런 상식이 깨졌다. IMF는 4월 펴낸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알루미늄과 구리의 재고율은 과거 경제 침체 때 최대 7.5%포인트까지 늘어난 반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이번 경제위기 때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고 밝혔다.
원자재 재고율이 낮았던 데는 자원 개발·보관에 대한 투자 공백이 한몫했다.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분석 총괄 이코노미스트인 제프리 커리(Currie)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볼 때 원유 등 원자재는 신기술과 자본을 투자해 신규 광구를 확보하는 개발 단계(investment phase)와 여기서 본격적으로 자원을 생산해 시장에 공급하는 이용 단계(exploitation phase)가 반복돼 나타난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은 이용 단계가 끝나고 개발 단계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광구에서 나오는 물량으로는 부족해져 새로운 개발이 필요한 단계가 됐는데, 지난 금융위기로 오일샌드, 심해 유전 등에 대한 투자가 일시에 중단된 탓에 이것이 여의치 않아 원자재 공급 불안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각국이 일제히 내놓은 경기 부양책으로 과거 경기 침체기에 비해 원자재 소비가 많았던 점, 미국이 금리를 낮게 유지함에 따라 원자재 가격과 역(逆) 상관관계를 보이는 달러화가 약세를 보인 점도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신흥시장의 '기대 이상'의 경제 성장세도 전 세계 원자재 가격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분기 11.9% 성장한 중국이다.
이런 가파른 성장세 때문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08년 하루 790만 배럴에서 2009년 850만 배럴로 늘어난 중국의 석유 수요가 올해 다시 910만 배럴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중국의 원유 수요 증가세에 대해 IEA는 "놀라운(astonishing)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광물자원도 마찬가지다. 2003년 이후 2008년까지 중국의 광물 자원 소비는 매년 평균 16%씩 증가했고, 전 세계 광물 수요 증가의 80%를 중국이 차지했다.
신흥시장의 경제 성장은 선진국에 비해 세계 원자재 수급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선진국에서는 새 차가 한 대 팔리면 낡은 차는 폐차돼 자원으로 재활용되지만, 신흥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1년 전보다 45%가 증가한 1450만대의 자동차가 팔렸는데, 5대 가운데 4대는 내놓을 폐차가 없는, 생애 처음 차를 사는 사람들에게 팔렸다. 인도 경제 역시 올해 8%의 고성장을 보일 것으로 IMF는 전망했다.
원자재 시장에서의 파워게임도 가격 상승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철광석이다. 전 세계 철광석의 70%는 3개 업체가 공급하고 있다. 발레(Vale·브라질)와 리오틴토(Rio Tinto·오스트레일리아), BHPB(오스트레일리아)가 그들이다. 최근 이들 업체는 매년 정하는 철광석 가격을 지난해보다 80~100% 인상하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에 지금까지 1년 단위로 정했던 철광석 공급 가격을 분기(3개월)마다 정해 가격 상승 요인을 수시로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리오틴토의 철광석 부문 최고책임자인 샘 왈시(Walsh)는 "과거 가격 산정 방식이 시장의 펀더멘털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유럽·중국 등 철강업계는 원유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처럼 '철광석의 OPEC'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인도에선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 등 자국 철강회사들까지 철광석 확보에 애를 먹자 정부가 철광석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수출 관세를 매긴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도 석유·알루미늄 등 주요 원자재 비축량을 늘리고 있으며, 철강 원료에 대해 20~25%의 수출 관세를 부과해 자원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08년 말 내놓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03년 시작된 원자재 시장의 수퍼사이클이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한 직후였다. 하지만 IMF는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원자재 시장의 수퍼사이클의 끝(end)이 아니라 일시적인 중단(pause)"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지금까지의 추세를 놓고 본다면 IMF의 예측이 더 정확하게 맞아들어간 셈이다.
대다수의 투자은행도 당분간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JP모건의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젠슨(Jansen)은 "올해 1분기부터 선진국들이 원자재 비축량을 늘리고 있어 가격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속도와 지속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 JP모건은 내년 유가를 각각 배럴당 110달러, 100달러, 90달러로 전망했다.
반면, 씨티그룹은 최근 펴낸 '원자재 가격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85달러, 이후에는 80달러로 낮게 봤다. 씨티그룹은 "단기적(3개월 이내)으로는 유가가 85달러까지 오르겠지만,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달러 강세로 유가 상승세가 꺾이고, 2011년 중반부터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물 고평가(backwardation·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현물가격이 선물가격보다 높은 상태)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IMF는 "중국의 원자재 소비 증가세가 10%대에서 5%로 둔화될 수는 있겠지만, 중국의 1인당 원자재 소비량이 선진국은 물론 다른 개발도상국보다도 적다는 점을 고려할 때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