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플라스틱, 431兆 시장의 앞날은
중국이 당긴 퇴출 방아쇠…산업 생태계 변형, 대체소재 필요에 직면 |
SK케미칼이 개발한 '바이오 플라스틱' 에코젠을 활용해 만든 페트병./사진=SK케미칼 |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를 대신해 '플라스틱'에 작별을 고했다. 지난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더미로 인해 우리 바다가 더 이상 더럽혀져선 안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20세기 초 플라스틱이 인류의 삶 속에 들어온 이후 올해만큼 이 소재가 성토된 적은 없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빨대와 면봉, 일회용 나이프와 포크 사용을 2021년까지 완전 금지하도록 뜻을 모았다. 미국은 시애틀과 말리부 등 도시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퇴출했다. 한국은 비닐봉지 사용량을 2022년까지 35% 감량할 목표를 세웠다. 또 1회용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2027년까지 점진적으로 금지시키기로 했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는 지난 5월부터 구내식당에서 에코백 사용을 권장해 하루 4만여장 쓰이던 1회용 비닐봉지가 약 2만8000장 수준으로 줄였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들도 플라스틱 빨대 퇴출에 나선 상황이다.
사실 플라스틱의 환경오염 위험성 지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997년 북태평양에서 '플라스틱 섬'(Plastic Island)이 발견된 지 20년이 넘었다. 헌데 왜 올해 유난히 퇴출 움직임이 거세어졌을까.
◇중국이 당긴 방아쇠=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플라스틱에 대한 반감은 더 이상 폐기물을 받아줄 곳이 없어진 현실에서 출발한다. 폐플라스틱 산출량의 절반을 받아들여 흡수해온 중국이 올해 1월부터 이 수입을 돌연 금지한 것이다. 30여년간 경제력을 키워온 중국은 올해 초 조치로 더 이상 자신들이 쓰레기 수입국이 아니라고 천명했다.
미국 조지아대 연구진(사이언스어드밴스 게재)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금지 조치로 인해 각국은 2030년까지 약 1억1100만톤에 이르는 폐플라스틱을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간으로는 900만톤이 넘는 양이다. 매년 바다로 유입된 폐플라스틱이 800만톤 규모인데 앞으로 문제 총량이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1억톤이 넘는 폐플라스틱은 500년간 분해되지 않고 쌓인다. 자연 생태계 먹이사슬에 악영향을 주고 인류의 건강과 식량 문제에도 문제를 미친다. 전세계가 플라스틱 퇴출에 공감하기 시작한 까닭은 이 소재를 줄이는 것이 우리 인류 스스로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바다로 유입된 폐플라스틱은 해마다 100만 마리의 바닷새와 10만 마리의 바다 거북이를 해치고 병들게 한다. 해양 동물들이 이를 먹이로 착각해 먹고 죽거나 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수돗물에선 분해되지 않은 5mm 이하 초소형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이 미국과 영국, 인도, 쿠바, 이탈리아 등 14개국 수돗물 샘플 159개를 분석한 결과 128개 샘플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인간의 건강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플라스틱이라도 단기간에 퇴출하기는 힘들다. 퇴출을 말하기에 앞서 두 가지 딜레마가 있다. 산업적 경제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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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431兆 시장 =씨티리서치(Citi research)는 현재 전세계 플라스틱 시장 규모를 약 1조 달러(1111조원)로 평가했다. 이 가운데 포장재가 절반 가량인 45%를 차지하고, 그 중 재활용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재활용되지 않는 약 3870억달러(약 431조원) 시장이 빨대와 비닐봉지 등 일회용 제품이다.
국내에서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시장규모는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 영세한 중소업체가 대형 화학사 원료를 받아 생산하는 구조다. 하지만 세계 12위 경제국인 동시에 1인당 연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시장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kg으로 미국(97.7kg)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SK종합화학, GS칼텍스 등 국내 대형 화학업체들은 식물 소재를 적용하거나 화학합성물질 사용을 줄인 친환경 플라스틱을 개발 중이다. 일부에선 성과도 나타났다. 친환경 플라스틱이 일회용을 대체하면 또 다른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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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변화의 속도다. 폐플라스틱 문제는 당장 경제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 터라 국가 차원의 규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상 업계는 기존 플라스틱 생산을 늘리는 투자에 비해 친환경 소재 개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오히려 범용 플라스틱의 기초 소재인 에틸렌 투자는 폭발적이다. 에쓰오일과 GS칼텍스, LG화학, 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은 올해만 모두 10조원 이상을 에틸렌 설비 투자에 쏟아붓기로 했다. 2023년이면 에틸렌 생산 규모는 현재 900만톤 수준에서 1300만톤 이상으로 불어난다. 미국에서는 올해만 70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 설비가 추가된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투자계획에는 중국 변수에 따른 플라스틱 수요 감소 가능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세계적으로 일회용플라스틱 규제가 갑작스럽게 속도를 내면 원료를 생산하는 대기업부터 제품을 만드는 영세업체까지 플라스틱 밸류체인이 무너지고 이는 경제·사회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新소재 혁명 속도전= 또 다른 난제는 친환경 플라스틱이 가진 이중성이다. 현재 개발됐거나 개발 중인 친환경 플라스틱에는 화학합성소재가 줄고 자연상태에서의 빠른 분해를 돕는 소재가 쓰이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친환경 부작용이 지적된다. 예컨대 목재는 대표적인 친환경 소재이지만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 목재를 대체재로 대량 사용할 경우 산림 훼손은 불가피하다.
플라스틱을 줄이려다 초가삼간을 태우고 숲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의 패러독스는 전기차의 환경적 역설과 비슷하다. 전기차가 환경에 낫다지만 이 전기를 얻기 위해 또 다른 화석연료를 태우거나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신재생 발전을 시작해야 하는 문제다.
이런 딜레마는 플라스틱에 대한 안녕을 머뭇거리게 한다. 플라스틱은 석기와 청동기, 철기를 이어 인류 문명 발달의 새 시대를 연 소재다. 이 어마어마한 역할을 확실히 대신할 신소재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큰 산통이 있을 거란 지적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생분해성 수지로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건 단기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생태계 전반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우선 일회용 제품의 낭비부터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90308592924318&typ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