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글의 시대로

나는 축구에 관심 없다. 독일에서 자라면서도 성인 22명이 공 하나를 쫓아다니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월드컵 같은 국제 행사의 역사적 의미는 분명하다. 독일과 프랑스, 인도와 중국, 미국과 멕시코가 서로 총을 겨누는 것보다야 공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 당연히 더 바람직하겠다.
스포츠의 핵심은 규칙과 페어플레이다. 경쟁은 하되 합의된 규칙을 따라야 하고, 반칙과 속임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국제사회는 20세기 중반부터 '스포츠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215년 영국 '마그나카르타'를 시작으로 집권자와 국민의 관계는 법치화 되기 시작한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은 국민의 자유, 평등, 그리고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19~20세기에 들어서며 대부분 국민은 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 하지만 법치국가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여전히 식민지 국가들을 약탈했고, 20세기 초 일본 역시 헌법과 국회를 가지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법과 규칙을 존중하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었다는 말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인류는 20세기 중반 결심한다. 전쟁과 학살 그리고 약탈과 파괴의 반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UN과 IMF, 유네스코와 월드뱅크. 모두 국가 간의 관계를 규칙화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 가지 큰 실수를 했는지 모른다. 우선 경제적 발전은 언제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가설은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반박되고 있다. 둘째,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자유로운 유럽연합에서조차 민족주의를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셋째, 룰(rule) 기반 국제 관계를 설계하고 리드한 미국이 이젠 반대로 그 룰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룰 기반 국제 관계와 자유무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페어플레이의 세상은 끝나가고 다시 정글의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3/20180703038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