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2014년엔 괴이한 일도 있었다. 런던의 한 이발소가 행사 포스터의 배경으로 김정은 사진을 썼다가 북한 대사관 직원 두 명으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불경스럽다. 떼라”는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포스터엔 ‘배드 헤어 데이(BAD HAIR DAY?)’란 문구가 있었다. 이발소는 ‘머리 모양이 별로인 날’을 뜻한 듯한데, 결국 문구의 또 다른 의미(일진 사나운 날)대로 된 격이었다.
어쨌거나 태 전 공사의 책을 읽는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김정은이 형을 맡길 정도였던 엘리트 북한 외교관의 관점에서 본 북한이어서다. 그 나름의 작동 논리와 희로애락이 있었다. 인상적인 대목이 적지 않은데 특히 두 부분이 그랬다.
“2017년까지 핵 무력을 완성하고 2018년 초부터 조선도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화하는 평화적 환경 조성에 들어가야 한다.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창조적으로 적용, 핵보유국으로 남는다.” 2년 전 북한판 재외공관장 회의에서 모였다는 의견이다. 지금은 어떤가.
“비난도 비판도 아닌 비관이었다.” 인민군 중장이던 장인이 김정일 시대에 도청 끝에 추방된 사유라고 했다. 비관마저도 금지된 사회, 아득했다. “삼수갑산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을 수 있게 하라”는 김정은 시대는 어느 정도인가.
사실 독특한 게 또 있다. 책을 소비하는 심리다. 북한의 비난은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에 달리는 리뷰는 뜻밖이었다. “현 정부에서 사실상 금서가 될 수 있으니 빨리 사야 한다.” 우리야말로 어떤 상태인가.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