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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앞날, 평화협정보다 한·미방위조약에 달렸다

또랑i 2018. 5. 7. 12:28

“남북 평화협정 체결 시 주한미군 문제는 향후 의제로 포함될 것이다. 먼저 동맹과의 협상은 물론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우리가 논의할 이슈의 일부다.”(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지난달 27일 펜타곤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 “한·미 동맹의 문제”
외부 위협이 있는 한 존재 이유

북 남침 격퇴 위한 유엔사·연합사
종전선언 땐 위상·규모 조정 예상

미국, 중국의 해상굴기 견제 위해
최대 해외기지 평택 포기 안 할 듯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주한미군이 감축되거나 철수하는 것에 대해 한국 보수세력이 강력히 반대할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커다란 정치적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 지난달 30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문제다.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문재인 대통령, 2일 청와대 참모들과 티타임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reducing)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펜타곤(미국 국방부)에 내렸다.”(뉴욕타임스 3일 보도) 
  
주한미군을 둘러싼 논란이 어지럽다. 주한미군 철수(또는 감축)를 놓고 등장인물만큼이나 발언도 다양하다. 청와대와 한국 국방부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진화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NYT 보도가 나온 뒤 청와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핵심 관계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NSC 관계자는 연합뉴스에도 연락해 “존 볼턴 백악관 NSC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곤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남북관계 훈풍 따라 주한미군 감축·철수론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현재 주한미군 규모는 2만8500명. 주한미군 감축론은 잊을 만하면 나온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전문가는 주한미군의 가장 상징적인 부대인 미 2사단의 예하 1개 여단은 현재 순환배치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다른 여단들도 순환배치 차원에서 미 본토로 갔다가 (한국으로) 복귀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축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순환배치는 한국에 군사 장비를 놔둔 채 미 본토 또는 해외 주둔 병력들로 일정 기간마다 교체하는 부대 운영 방식이다. 최근 미 국방예산이 줄면서 해외 주둔 병력을 위한 가족 동반이 어려워지자 미 국방부는 순환배치를 장려하고 있다. 
  
유엔사 해체 여부도 평화협정과 별개 
  
정부가 4·27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올해 안에 추진키로 한 종전선언이 이행되고 뒤이어 평화협정까지 체결하게 될 경우 주한미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한국전쟁 당사자들끼리 종전선언을 하면 휴전 상태가 공식 종료된다. 따라서 정서적으로만 보면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기 위해 유엔 결의로 창설된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될 수 있다. 또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연합사령부의 존재 명분도 약화될 수 있다.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한·미 연합 전쟁 수행 시스템인 유엔사와 연합사가 해체되면 주한미군의 임무와 역할 또한 변경될 수밖에 없고 규모도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유엔사는 정전체제 유지와 유사시 유엔 참전국이 보내는 병력을 한반도로 동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연합사는 전시 한반도 작전을 수행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연합사령관은 북한이 핵으로 위협할 경우 북한에 대해 핵을 포함한 전략무기를 사용할지 여부를 미국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시행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유엔사 해체 문제는 별개다. 유엔사는 1950년 유엔 결의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유엔은 미국에 모든 것을 위임했다. 이와 관련, 94년 북한은 부트로스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에게 정전협정 대체와 유엔사 해체를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갈리 총장은 “미국만이 유엔사 존속이나 해체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유엔사의 깃발은 유엔이 줬지만 운영유지비와 주요 병력을 미국이 제공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유엔사 해체는 한반도 안보 상황을 평가해 한·미 양국이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도 연관이 있다. 1953101일 체결된 상호방위조약은 한·미 양국 중 어느 한 나라라도 외부로부터 위협 또는 공격을 받으면 도와주도록 돼 있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이 있는 한 주한미군 또는 그에 버금가는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론에 대해 “한·미 동맹의 문제이지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이 없다”고 말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동북아 전략 새판짜기 가능성 
  
아시아에서 중국이 눈에 띄게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과 더불어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대만에서 일본 남쪽에 이르는 제1도련선(섬과 섬을 연결한 선)을 구축하고 있다. 2025년 이후에는 제1도련선 안으로 미국의 해군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게 중국의 목표다. 그렇게 되면 대만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해상수송로가 중국의 군사적 통제권에 들어간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해외 기지를 계속 확보해 나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이에 대한 견제도 필요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을 의식해서라도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새로 조성된 평택 미군기지는 중국에 가장 가깝고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여서 미국이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연동해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에 따라 미국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전략의 새 판을 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 감축을 거론하는 건 우리 정부와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압박용 카드로 사용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미주리주에서 열린 모금 만찬에서 한국과의 무역 적자를 얘기하며 주한미군 감축을 언급했다. 2016년 7월 대선 후보 시절에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kim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