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대와 중국의 강요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으니 우리도 싫든 좋든 조기에 결론을 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주석은 우리 대통령 면전에서 북한에 대해 사실상 '혈맹'이라고 했다. 중국이 북한 핵·미사일 폐기나 한반도 자유 통일 등에서 한국에 협력할 생각이 없다고 명백히 밝힌 셈이다. 그뿐인가. 원래 중화 사상의 국제 질서는 중국을 정상(頂上)에 둔 종적(縱的) 질서이고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은 바로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 꿈이 가장 날카롭게 주시하는 곳이 남중국해와 한반도다. 지금 중국이 '3불(不)' 이행과 '사드 철수'를 압박하는 것도 결국 한·미 동맹을 청산하고 중국의 영향권에 들라는 압박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이제 없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그리 되면 우리는 어찌 될까? 미국이 주도하는 '주권 평등을 전제로 한 자유 민주적 국제 질서' 속에서 이루어 낸 오늘 우리의 자유와 평화, 번영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과거 조공(朝貢) 질서로 되돌아가거나 제2의 티베트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번영을 위해 안보를 희생하면 두 가지를 다 잃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가 새삼 무겁게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이 지금이 어느 때인가. 완성 단계에 이른 북한 핵·미사일 앞에서 대한민국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고, 여기에 시진핑 주석의 야심 찬 중국몽,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차원이 다른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한 북핵 해결 의지가 맞물려 우리의 미래에 더할 수 없는 도전과 기회를 조성하고 있는 매우 특별한 시점이다. 한국의 태도에 실망한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포기시키는 선에서 북한과 적당히 타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참사(慘事)가 될 것이다. 여기에 만에 하나 중국군이 개입할 계기까지 만들어주면, 그것은 우리 미래에 더욱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가능성도 있다. 북한 핵·미사일이건 한반도 자유 통일이건 우리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미국이 동맹으로서 지원을 계속한다고 해도 '전략적 인내' 같은 것으로 이루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북한 핵·미사일을 해결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례 없이 단호한 의지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일 수밖에 없다. 아니, 한·미 동맹을 더욱 튼튼히 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기회로 만들어야 할 사안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너무도 자명하다. 한·중 관계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무릇 건강한 외교의 기저(基底)는 '상호 존중'이다. 그래서 국가 간에는 매사 정중하되 의연하고 당당해야 한다. 상대의 오만과 방자, 무례를 감내해서 무시와 경멸을 산다면, 혹시 성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국격을 욕되게 하고 국익을 손상하는 금기(禁忌) 중 금기이다. 이래저래 결국 오늘 우리로서는 튼튼한 한·미 동맹을 전제로 중국에는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해서 그들이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그 위에 중국의 사회적 이성(理性)에 양자의 국익을 앞세워 설득하는 것이 대중 정책의 정도(正道)요 한계일 것이다. 한·중 관계가 아무리 중요해도 한·미 동맹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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