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구 "위기 또 온다...시장은 이념에 물든 정책 소화 못한채 토해낸다"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20년이 지났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IMF 요구에 맞춰 전방위적 구조조정과 정책 기조의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가 다시 심각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위기설(說)이 다시 나오고 있다. IMF와 협상을 직접 진행했던 당시 경제팀에게 위기설이 나오는 이유와 해법을 들어봤다.<편집자>
IMF협상 실무대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위기 요인 못 고쳐”
“내가 벼랑길을 산책하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고 하자. 그런데 네가 나한테 와서 구해줄테니 그대신 너의 아름다운 부인을 나에게 달라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1997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선언한 건 11월 21일이었다. 이후 정부는 곧바로 IMF와 협상할 실무 협상팀을 조직했다. 임창열 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정덕구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의 지휘 아래 김우석 국제금융증권심의관이 부단장을, 최중경 금융협력담당관이 총괄반 반장을 각각 맡아 IMF와 협상을 진행했다.
11월 24일부터 12월 21일까지 피 말리는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IMF는 단기금리 인상, 12개 종금사 즉시 폐쇄, 부실은행 처분, 저성장 통화긴축, 긴축재정 기조 유지, 채권 및 주식 시장 완전 개방 등을 지원 조건으로 내걸고 한국을 압박했다. 당시 차관보였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아름다운 부인’을 비유로 들며 IMF와 주요 7개국(G7)들이 내건 조건들의 실행이 쉽지 않다고 말한 건 유명한 일화다.
당시 어렵게 IMF와의 협상을 타결지었던 경제팀들은 외환위기 이후 20년간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니어재단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치욕의 역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말을 아껴야 한다"면서도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무거운 대답을 내놨다.
정 이사장은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양극화와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정체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은 불충분한 미봉책이 됐고, 각 정권들이 이념을 경제 정책에 투영하면서 정부와 시장과의 역할 분담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 ▲ 지난달 30일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니어재단에서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한국에 외환 위기가 온 원인은 무엇이었나.
“1997년 동아시아 위기 때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의 파고를 이기지 못한 건 외환 정책, 산업 정책, 기업 지원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만 문제가 된 건 아니다. 한국이 개방형 시장 경제로 진입하는 세계화 단계에 진입했데도 정부는 소위 박정희식 개발 모형인 정부 주도 산업화 전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이것이 개방된 시장 체제에 맞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을 막았다. 정부가 기존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 참여자들을 방해하면서 매우 취약한 생태계를 갖게 됐다.
박정희식 개발 모형에서 경제는 정치의 상위 개념이었다.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많은 정치와 사회의 희생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발전 모형은 이후 민주화와 개방형 시장 경제의 발전, 급속한 소득 증가에 도전을 받게 됐다. 특히 자본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자유 무역이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경제와 사회 생태계 전반에 부조화 현상이 발생했다.”
-IMF는 고금리에 고강도 재정 긴축, 금융시장 개방, 부실금융기관 폐쇄 등을 요구했다. 협상 분위기는 어땠나.
“외환위기 협상은 미국의 정치 세력 다툼에서 국무부가 승리한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 장관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 장관이 한국 문제를 두고 다퉜다. 클린턴 행정부는 전략적으로 “한국을 살려야 한다”라고 결정했고,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줬다. 루빈 장관은 골드만삭스를 통해 마지막까지 한국을 압박했다.
긴급 처방이었다고는 하지만 고금리를 유지하면서 고강도 재정 긴축을 요구한 건 이론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그 중에 금리 협상이 어려웠다. 콜금리는 단기 금리이기 때문에 인상해도 기한을 정해 놓고 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 조차 없었다. 씨름판에서 씨름을 하는데, 우리는 샅바를 놓친 씨름꾼 같았다.
사실 1997년 태국발 금융위기가 오고, 기아 자동차가 부도 위기에 몰릴 때 ‘신의 한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모든 민간 은행 채권을 지급보증한다고 했으면 ‘환란(患亂)’을 피해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위기를 넘겼더라도 내부에 곪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곧 터졌을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제 2의 위기설(說)이 나오고 있다.
“1998년 이후 한국 정부의 개혁은 IMF와의 협정을 바탕으로 한 미완의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1997년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 일부가 노출된 후 세계 리더 국가들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터져 나오면서 그들과의 교역을 통해 성장해온 한국은 수출이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됐다.
1998년 이후 한국 경제는 기업, 금융, 노동, 공공 서비스 등의 구조조정 시기를 거치고, 중국 경제 특수에 힘입어 성장 경로에 재진입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와 성장 잠재력 하락에 접어들고 양극화, 고령화, 가계 부문 침강 속에서 정체기에 빠져들고 있다. 노동 생산성, 자본의 한계효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가운데 정부의 혁신 노력이 지지부진하면서 생태 구조의 병리 현상이 두드러지고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정체 현상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 ▲ 지난달 30일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20년간 한국 경제가 놓친 것은 또 무엇이 있나.
“외환위기 이후 국가 공동체와 국민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외환 위기를 겪으며 ‘누구도 나를 도와 주지 않는다’라는 걸 깨달았다. 국가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동체 이익과 개인 간의 이익 충돌에서 ‘개인’의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각자 도생의 생존 방식이 생긴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사회 생태계 변화라고 생각한다.
일자리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보호막 속에서 과잉 고용 상태를 유지했던 기업들이 버티지 못하면서 사회로 근로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회 안전망이 받아주지 못했다. 창업을 해도 각자 도생이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위험이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건 한국 경제가 과잉 정치와 과잉 이념화에 빠졌다는 것이다. 경제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 분담으로 이뤄진다. 시장은 이념을 싫어한다. 경제학에는 이념이 있지만, 시장에는 이념이 없다. 전문가 그룹이 아닌 정치 그룹이 경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독재자들은 정치 기반에 자신이 있어 경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문민 정부가 들어오면서 정치 기반이 분산되자 지도자들이 경제를 손에 쥐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몇몇 대통령들은 정치를 경제의 상위 개념으로 올려 놓고 시장을 쥐어짜며 압박을 가해왔다. 보수 정권 10년, 진보 정권 10년 동안 각 정권들은 각자의 이념적 잣대에 따라 검증되지 않은 경제 정책을 계속해왔다. 경제가 사회와 정치 현상에 침윤 당하며 위축되기 시작했다. 5년 단임 정권들로 인해 정책이 이념적으로 포장되고, 염장되고 있다. 시장은 이념에 젖은 정책들을 소화하지 못하고 토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가 좀비 사회가 되는데다 늙고 황폐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과의 역할 분담에 실패한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경제를 정부 주도로 끌고 가다가 실패했다. IMF 체제를 넘어오면서 시장 중심 경제로 변화하려고 했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이런 격언이 있다. ‘시장은 천사이지만 자주 악마로 변한다. 정부는 악마인 시장을 다스리려 시장에 진입하지만 너무 오래 머물면 폭군으로 변한다. 그 후 시장은 박물관의 박제 처럼 굳어져 간다’ 우리가 그대로 됐다. 정부가 시장에 머물렀다. 망하는 곳은 망하게 두고 시장에서 퇴각했어야 했는데, 정부가 시장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생태계가 심각한 병리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IMF 차관을 상환한 이후 다시 정치가 경제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정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 생존의 길에 들어섰고, 방대한 규모의 중소기업 신용보증제도는 수많은 좀비 기업을 양산했다. 정부는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막는데 급급해 한국 경제 생태계의 부조화 현상을 깨닫지 못했다.
정부는 특히 중국 경제가 부상하며 한중간의 보완적 산업 관계가 깨지고, 산업별 부가가치 사슬 구조 내에서 한국 기업이 중국에 부딪히며 밀려나는 과정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중국 북경대, 인민대 초빙교수를 한 적이 있는데, 한국은 중국의 빈공간을 메꾸는 과정에서 먹을게 많겠다고 생각한 반면 중국 리더들은 한국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생각은 이미 세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한국 기업, 산업, 기술 생태계는 혁신과 변화의 길에서 길을 잃고 점점 불균형적 생태계로 가라앉으며 정체의 길에 들어섰다.”
- ▲ 외환위기 당시 협상 실무 책임을 맡았던 휴버트 나이스 전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왼쪽)과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최근 한 포럼장에서 다시 조우했다./사진=니어재단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다음 위기가 어디에서 생길 것 같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생태계의 반란’에서 올 거라고 대답한다. 선진 사회는 시장의 경쟁성과 함께 시장과 정부 사이의 역할 분담이 적절하게 확립되고 있다. 이런 것이 없는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정치가 이를 막으려다 재정 파탄을 일으키는 악순환적 위기가 올 것이라고 본다.
경제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적 결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정책을 세우고 정치가 그 결과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개헌이 시급하다. 5년 단임 정치 아래에서는 회복이 쉽지 않다. 시장 체제 내부의 독과점적 담합 구조와 갈등, 갑을 관계 등을 깨뜨려야 한다. 금융시스템과 사회 안전망 구축도 중요하다. 낙후된 금융감독제도로 인해 진입 장벽이 생기고 있다. 경제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바꾸려면 규제는 대부분 털어내고, 시장 내부에 경쟁의 법칙을 새롭게 정립해 주어야 한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 분담 체계도 정상화 해야 한다. 시장이 본연의 작동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정부는 시장의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병리 현상에 대해 조기 경보 체제를 적기에 가동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이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적 편향성으로 시장을 왜곡하면 안된다. 정부가 사회 분야에서 새로운 기능을 찾고, 경제 분야에서는 거의 손을 뗄 때가 됐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흐름에 타격을 입지 않도록 기업, 가계, 정부의 경쟁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노력도 해야 한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5년 단임 대통령들은 외발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외발 자전거는 자본과 노동을 자꾸 분리시킨다. 보수 정권들은 자본의 외발 자전거를 타고, 진보 정권들은 노동의 외발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외발 자전거로 얼마나 갈 수 있겠나.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 주도 성장 등 외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안될 것 같아 혁신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음 속은 여전히 외발 자전거를 타고 있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과의 통상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외교 라인은 재설계가 필요하다. 현재 외교는 청와대 중심으로 가고 있다. 외교관들이 다루기 어려운 강대국들과의 외교가 문제가 되고 있어서다. 미국, 중국과 싸우는 문제는 각 나라 정상들이 나설 수 밖에 없다.
현재 외교에도 이념이 침투해 있다. 외교 정책이 이념에 휘둘리고 있는데, 이것을 막아야 한다. 일본에 대해서는 미래 지향적으로 외교 전략을 재정비해야 하고, 중국과는 어떤 방법으로 싸울 것인지 다시 결정해야 한다. 러시아와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외교 중심을 동북아 국가에서 태평양 국가로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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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8/2017110801208.html#csidx94d6dc44e8519b286f05a5627d6b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