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쏟아지는 '수입규제'… 보호무역 파도가 다시 출렁인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경계령]
국가 간 불공정 무역 막기 위해 반덤핑·상계관세 등으로 제재
불황 땐 자국 보호용으로 남용… 한국이 받는 규제 수, 세계 2위
기업 차원서 수입국 대응해야 해… 초반부터 포기하는 사례 늘어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한 직후인 1930년 '스무트-할리(Smoot-Hawley) 관세'라고 널리 알려진 미국의 관세법이 발효됐습니다. 목적은 수입 제품과 경쟁하는 미국의 일자리와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관세 장벽을 쌓자마자 캐나다와 유럽 국가들도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관세를 올렸고, 이러한 보호무역 조치의 확산은 결과적으로 불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여러 국가가 가장 먼저 경계했던 점이 바로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가능성이었습니다. 금융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가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질 경우 더 큰 혼란과 파국이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당시 국가 간 공조를 통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다시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경계주의보가 등장하고 미국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미국발 보호무역 조치가 가시화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920년대와 동일하게 미국의 일자리 감소 원인으로 무역을 지목하고, 미국 국내 통상법상 수입을 규제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내들고 있습니다. 미국이 수입 규제 수단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반덤핑·상계관세 조치를 강화할 뿐 아니라 2001년 이후 16년 만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심지어 1960년대에 제정된 통상법(1962년 무역확대법 232조)에 따라 철강 제품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근거로 수입산 철강 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무역 구제 조치의 강화와 남용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무역협정은 수입국 입장에서 수출국의 국내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출을 하는 기업의 덤핑(dumping)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입국은 해당 수입품에 대해 덤핑 마진에 상응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해 수출 기업이 자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수출할 경우 수입국은 해당 수입품에 대해 상계관세(countervailing)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반덤핑·상계관세를 무역 구제(trade remedy)라고 일컫는 이유는 덤핑과 수출국의 보조금 지급 행위가 수입국 산업에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입증됐을 때에만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부과되는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 덤핑이나 보조금과 같은 불공정 행위 없이 수입이 갑작스럽게 증가해 수입국 산업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품목의 수입을 한시적으로 규제하는 세이프가드(safeguard)도 무역 구제 조치에 해당합니다.
- ▲ 지난 26일 부산항 신선대 부두와 감만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 우리 수출은 지난 3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6.1% 증가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이 최근 세이프가드·반덤핑 조사로 통상 압박을 하고 있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처럼 반덤핑·상계관세 부과와 세이프가드는 WTO 회원국의 정당한 조치이지만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남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자국 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한 반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경기 부진시 수입품과 경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기업의 청원이 증가하고 정부가 규제 조치를 취하는 건수도 증가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WTO에서 집계하는 전 세계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조사 개시 건수 추이가 보호무역주의 흐름의 지표로 자주 활용됩니다. WTO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조사 개시 건수는 2002년 이후 최대 수치인 345건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수입 규제 현황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수입 규제를 많이 당하는 국가입니다. 무역협회 수입 규제 통합지원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10월 현재 한국에 대해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규제 조치 또는 조사 중인 건수가 총 190건에 달합니다. 국가별로는 인도와 미국이 각각 31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별로는 세계적인 공급 과잉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철강 제품에 수입 규제가 집중돼 있습니다.
- ▲ 서울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 진열된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 세탁기. 지난 5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삼성·LG가 만든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기로 했다. /이덕훈 기자
한국에 대한 수입 규제와 관련해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미국의 규제 조치가 크게 증가한 것입니다.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이 한국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사를 개시한 건수가 연간 2건 이하였으나, 2015년 4건, 2016년 5건으로 증가한 이후 금년에는 10월까지 이미 8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건수 자체가 증가한 것 이외에 대상 품목 범위가 확대되고 규제의 강도가 높아진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내 보호무역 조치를 요구하는 기조가 여러 산업에 확산하면서 한동안 뜸했던 섬유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가 시작되고 볼베어링 제품이 처음으로 미국으로부터 반덤핑 제소를 당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최근 조사 당국의 재량권을 높이기 위해 반덤핑 절차법을 개정해 고율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 건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수입 규제에 대한 전방위적 대응 필요
우리 전체 수출에서 수입 규제 조치로 영향을 받는 수출의 비중만 본다면 그 심각성에 비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규제를 당한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조치는 해당 기업 차원에서 수입국 조사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회계적·법률적 대응을 위한 상당한 비용 부담이 따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소기업은 대응 자체를 포기하고 신규 수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일단 수입 규제를 위한 조사가 시작되면 수입국 산업에 피해가 없다는 판정을 받거나 최대한 규제 수위를 낮추기 위해 조사 당국의 요구에 충실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특히 최근에 미국 조사 기관이 수출기업의 자료 제공과 조사에 대한 협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해당 기업에 불리한 정보를 이용해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수입국의 수입 규제 조치가 해당 WTO 협정에 위배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수출 기업 차원이 아니라 기업이 속한 국가의 정부가 WTO 분쟁 해결 절차를 통해 해당 수입국을 상대로 협정 위반에 대한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1995년 이후 지금까지 500건 이상이 WTO 분쟁 해결 절차에 회부됐는데, 가장 빈번하게 문제가 제기되는 분야 중에 보조금 및 상계 조치에 관한 협정과 반덤핑 협정이 포함됩니다.
당분간 수입 규제 조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규제 타깃이 어떤 산업으로 확산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기업들은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헤쳐나가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리스크 예측과 관리에 더욱 관심을 갖고 힘쓸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정부 차원에서도 WTO 분쟁 해결 절차 활용 등 외교·정치적으로 가능한 모든 채널을 활용해 우리 기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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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30/2017103000100.html#csidx13ac8ccc149ad7cb3ffdc625a898e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