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10·4 정상 선언이 이행돼 나갔다면 현재 한반도 평화 지형은 크게 변해 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명박·박근혜 10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존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북핵 위기의 결정적 진실을 감춘다. 핵무장을 향한 북한의 필사적 국가 의지가 한반도 전쟁 위기의 근원임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모두 북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 북핵 위기의 실체다.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조차 북한의 폭주를 저지하지 못했다. 한 국가가 모든 걸 포기하고 핵무장에 매진할 때 핵개발을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국제정치학의 속설을 입증한다.
햇볕정책과 압박정책 둘 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진보·보수가 지금처럼 상대방만 탓하는 것은 자중지란에 불과하다. 북한발(發) 핵 참화에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10·4 합의 중 많은 것이 이행 가능하다"는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핵심 질문에는 침묵한 채 특유의 선의(善意)와 당위론만을 반복한다. 남북의 사활적 체제 경쟁에서 최후의 뒤집기 한판승을 눈앞에 둔 김정은으로서는 코웃음 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