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 짜라투스트라 니체 히틀러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의 다른 발음이다.
조로아스터 (Ζωροάστρης, Zōroastrēs)는 그리스식 발음이고, 당시 생존시에 사용한 고대 페르시아어에 해당하는 아베스타어 발음으로는 '자라투스트라 (Zaraϑuštra)'에 가깝다고 한다. 영문으로 '조로아스터 (Zoroaster)', 독일어식으로 '차라투스트라 (Zarathustra)'인데 보통 국내에선 영미권의 영향과 니체의 저서덕에 조로아스터나 차라투스트라 (혹은 짜라투스트라)로 알려져있다. 이름의 뜻은 아베스타어로 '낙타를 잘 키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3,753년 전 시작된종교
고대 페르시아에서 고위 사제 계급으로 태어났다. 조로아스터(Zoroaster)의 삶과 출생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BC 1500경 ~ 1300경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조로아스터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그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란 동부 혹은 중앙아시아 출신이라는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다.
당시 페르시아는 기원전 3000여년 경에 아리안족이 현재 이란 지방을 정복했다. 이름의 뜻인 '낙타를 잘 키우는 사람'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배계층인 아리안족은 유목을 중시했으며 자신들의 신들을 모셨다. 기존 이란(페르시아)땅의 피지배계층들은 농업사회에서 여러 잡신들이 기존의 신앙과 피지배층의 신앙과 연관되어 잡탕으로 섞여 있는 다신교 사회였고 여러 신앙들이 난립한 가운데 종교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20살에 처음 종교에 깊이 빠지면서 가족과 친구와 멀어졌고 30세에 진리에 빠져들게 되었고 인류최초로 일신교 사상에 가까운 종교를 창시하게 된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40세까지 그가 설득한 사람은 사촌 형제 단 한사람이었다고 한다. 다신교에 빠진 자신의 고향에선 배척과 탄압을 받다가 페르시아 동북부 박트리아로 건너가게 되었고 몇 년 후 박트리아 왕을 설득하여 개종하는데 성공하여 교세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의 교리로는 전문서적이나 밑의 링크와 조로아스터교 항목을 참조하는게 백배 낫겠지만, 일부 설명하자면 '지혜의 최고 신'이라는 뜻의 절대자 '아후라 마즈다'와 그의 대적자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후에 아흐리만(Ahriman)이라고 불림)의 이원론적 일신론으로 둘 사이에서의 대립에 인간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자로 선을 보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자유 의지를 지녔다고 하는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
조로아스터교는 일반적으로 마즈다교 또는 마즈다이즘(Mazdaism)과 본질적으로 동의어로 사용된다(아후라 마즈다를 예배). 조로아스터교에서, 창시자 아후라 마즈다는 모두가 선하며, 그로부터는 어떤 악(惡)도 기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로아스터교에 있어서 선과 악은 분명한 근원을 가지는데 악(druj)은 마즈다(asha)의 창조를 파괴하고자 하고, 선(善)은 그것을 지속하려고 한다. 이 종교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아베스타의 텍스트들인데, 그 중요 부분은 상실되었고, 대부분의 유일한 예배의식만이 존속하고 있다. 상실된 부분은 주로 9세기부터 11세기까지 다만 후기의 작품 속에서의 참고와 간략한 인용문을 통하여서만 알려져 있다.
아후라 마즈다
조로아스터교도들은 하나의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신 아후라 마즈다 만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종국적으로는 모든 예배가 지향되는 창조되지 않은 창조자로 일컬어진다. 이 종교는 선한 생각, 선한 언어와 선한 행위를 통하여 인생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행복을 보장하고 혼란을 막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설교한다. 이 능동적인 참가는 조로아스터의 자유 의지의 개념에 중심적인 요소이며, 또 조로아스터교는 모든 형태의 수도원 생활을 거부한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아후라 마즈다는 궁극적으로 사악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혹은 아리만(Ahriman)에 승리할 것이며, 그 시점에서 우주의 혁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시간이 끝나게 될 것이라는 사상을 갖고 있다.
이런 교리로 당시 유행이었던 짐승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식물성 약물로 취해서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것뽕을 엄격히 금지했다고 한다. 창조주가 만든 땅, 불, 바람, 물을 깨끗하게 여길 것도 강조했다.
불을 신성히 한 것으로 인해 배화교도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하루 5번에 쓰이는 의식을 신성히 여기기' 때문에 그 때 쓰이는 성화를 보존하려고 한 것이지 토속 신앙에서 처럼 불을 숭배하는 종교는 절대 아니다.
훗날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의 이름을 빌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써서 그나마 이름이 알려졌다.
최초의 일신교
하루 기도 5번
‘아리안족’ 하면 잊을 수 없는 세계 역사적 사건이 있다. 바로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순수혈통을 보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유대인 대학살’을 일으킨 것이다. 나찌의 심볼과 불교의 만(卍), 십자모양의 문양 등은 조로아스터교의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나왔다. 영어로 조로아스터이지만 페르시아식 발음은 짜라투스트라다. 니체는 조로아스터와 불교에 매우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로 대변되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세계적인 철학서를 썼다고 한다. 영겁회귀로 순환되는 삶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나왔고, 그 순환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나찌의 심볼과 불교의 만(卍), 십자모양의 문양 등이다. 자연의 지수화풍도 영겁회귀로 순환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아리안족은 중앙아시아에 거주했으며, 이후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했다. 남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은 페르시아에 정착하며 이란의 원조가 됐고, 서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은 유럽 아리안의 원조가 됐다. 이들이 지금 독일인의 선조다.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불리며 수천 년 간 불려온 ‘페르시아’라는 국호를 사용한 이란, 그 이란이 지금 제재를 벗어나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란은 아리안족의 후예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리안족’ 하면 잊을 수 없는 세계 역사적 사건이 있다. 바로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순수혈통을 보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유대인 대학살’을 일으킨 것이다. 나찌의 심볼과 불교의 만(卍), 십자모양의 문양 등은 조로아스터교의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나왔다. 영어로 조로아스터이지만 페르시아식 발음은 짜라투스트라다. 니체는 조로아스터와 불교에 매우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로 대변되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세계적인 철학서를 썼다고 한다. 영겁회귀로 순환되는 삶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나왔고, 그 순환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나찌의 심볼과 불교의 만(卍), 십자모양의 문양 등이다. 자연의 지수화풍도 영겁회귀로 순환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니체의 위대한 사상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아리안족의 우월주의에 이용되기도 한다.
애초의 아리안족은 중앙아시아에 거주했으며, 이후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했다. 남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은 페르시아에 정착하며 이란의 원조가 됐고, 서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은 유럽 아리안의 원조가 됐다. 이들이 지금 독일인의 선조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적 철학자인 짜라투스트라를 모델로 그의 언행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를 썼다. 전체는 4부로 나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10년간 은둔해 있던 산에서 나와 거리의 대중에게 설교를 함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늘에 계시를 받았다는 신비주의자, 즉 수피인 짜라투스트라는 성서에 반하는 내용이 많다. 성직자나 학자와 같은 기성가치의 옹호자는 조소를 받고 새로운 우상으로서의 국가의 허상이 폭로됐으며, 여성이나 어린이에 대해서도 약자보호 사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인간의 극복과 초인의 출현이 요청되고 예언했다. 이러한 초인을 지향하는 설교를 헤치고 나가 짜라투스트라는 ‘영겁회귀’사상에 도달한다. 이어 영겁회귀에의 해탈이 주제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환영과 혼미, 쾌유로 향하는 자, 위대한 동경 등의 장은 인간의 어떠한 의지로도 극복할 수 없는 과거를 영원히 회귀하는 운명이 긍정으로 전화되는 내면의 투쟁을 묘사한 니체의 가장 심오한 사상의 성숙을 말해준다.

히틀러는 니체의 초인사상을 아리안족의 우월성으로 이용한다.
니체는 전형적인 수재였다. 엘리트 학교인 슐포르타의 장학생이었던 그의 전공은 고전문헌학이었다. 니체는 고대 그리슬의 모습에 비추어 당시 독일의 정치, 세계의 모습을 바라봤다.
니체는 문명을 기본적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봤다. 그 원인을 인류가 이미 수명을 다한 낡은 가치관에 여전히 매달려 있다는 데서 찾았다. 겸손, 순종, 친절, 동정 등 우리가 품고 있는 선함의 기준은 사실은 ‘노예의 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노예는 항상 주인에게 겸손하고 순종해야 하며 친절하고 배려적이어야 한다. 주인도 노예의 도덕을 따르고 있다. 아무리 영리하고 강하다 할지라도 노예처럼 자신의 힘을 감추고 겸손해 하지 않는 인간은 도덕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평가받는다. 도덕은 강자를 약자로 만들어버렸다.
니체가 보기에 모두를 노예로 만든 주범은 바로 기독교다. 기독교는 불구자, 악한자, 부끄러운 병을 앓는 자, 구제할 길 없는 범죄자들을 모두 주인과 같은 인간으로 보고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 결과 인류 전체를 모두 열등한 인간의 기준에 맞추어 버렸다. 그래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다.

니체의 사상적 기반은 상당 부분 이란의 고대 종교이자 최초의 종교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에 기반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에게 중요한 과제는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뛰어나고 강한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다. “인류의 도덕은 가장 뛰어난 자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니체에 따르면 현대문명은 약자가 다수라는 이유로 문명을 이끌어 갈 뛰어난 소수를 억누르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니체는 ‘최후의 인간’과 ‘초인(超人:Superman)’을 대비시킨다. 최후의 인간은 쾌락과 만족에 빠진 창조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일하고 시간 나면 TV 등으로 소일하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이런 최후의 인간에 해당한다. 반면 초인은 지성과 긍지로 가득찬 사람이다. 넘치는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며 더 높은 곳으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사람이다. 그는 주인의 도덕을 따르며, 낡은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삶의 기준을 세우며 인류를 끌어올린다.

히틀러는 위대한 사상가 니체의 사상을 이용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니체의 이런 사상들은 히틀러를 만나면서 엄청나게 왜곡되면서 히틀러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니체가 죽기 전 미치자, 지독한 유태인 혐오주의자였던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에 의해 ‘니체신화’로 거듭난다. 니체의 저술들을 모아 짜깁기식으로 편집해서 왜곡을 일삼았다. 엘리자베스는 심지어 히틀러에게 “니체가 말한 초인은 바로 당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치는 유대인이나 슬라브인들을 하위인간(Untermenschen)으로 분류하고 우월한 아리안족, 즉 독일민족과 이란민족을 지배민족(Herrenvolk)으로 이들을 지배하며 문명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사상가 니체는, 행동가 히틀러’와 접합이 이루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