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케인 ‘하비’의 위성사진. [NASA]
태풍은 따뜻한 열대 바다에서 발생하는 강한 저기압성 소용돌이이다. 발생 위치에 따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예부터 부르던 말이 달라 서태평양에서는 태풍, 대서양에서는 허리케인이라 한다. 지난 9월 초 강력한 허리케인 ‘하비’에 이어서 ‘어마’가 미국 남동부 해안에 상륙했다. 이 두 허리케인에 의한 경제적 피해가 3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이처럼 강력한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태풍의 연료는 ‘하얀 석탄’ 수증기
온도 상승 땐 응결하며 열 방출
팽창된 공기 상승해 빠져나가며
중심기압 낮아져 소용돌이 일어
태풍 15% 세지면 파괴력 50% 늘어
21세기 동안 9.7조 달러 피해 추정
지구 에너지 불균형 조정하기 위해 발생
![지난달 9일(현지시간) 허리케인 어마로 만들어진 강한 파도가 쿠바 아바나의 말레콘 방파제를 강타하고 있다. [AP=연합뉴스]](http://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10/08/16cf8924-b102-4f5e-84ee-a81f594da3d9.jpg)
지난달 9일(현지시간) 허리케인 어마로 만들어진 강한 파도가 쿠바 아바나의 말레콘 방파제를 강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남북 간 에너지 불균형을 없애는 과정에서 모든 기상 현상이 발생한다. 중위도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은 열대지방의 따뜻한 공기를 북쪽으로,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를 남쪽으로 이동시킨다. 이와 함께 해양에서도 열대의 따뜻한 물이 북쪽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해도 열대 해양에서 과한 에너지가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태풍은 이 과한 에너지를 직접 북쪽으로 옮긴다. 여러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태풍은 지구의 생명력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우주에서 바라본 소용돌이치는 태풍의 모습은 지구가 살아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태풍은 따뜻한 해양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를 이용하여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키고 대기로 열을 방출하는 거대한 자연 엔진이다. 자동차 엔진이 휘발유를 폭발시킨 에너지로 바퀴를 돌리고 배기가스로 열을 배출하는 원리와 같다. 자연이 만들어 낸 태풍 엔진의 효율은 약 33% 정도로 인간이 정교하게 만든 자동차 엔진의 효율과 거의 같다.
태풍은 해양 수온이 26℃를 넘어야 생긴다. 이 수온 이상이 되어야 대기가 수증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많이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양 열이 수증기 안에 숨은 상태로 대기에 공급된다. 수증기는 ‘하얀 석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수증기가 곧 태풍의 연료이다.
수증기가 응결하는 과정에서 대기로 열을 방출하여 팽창된 공기가 상승한다. 태풍 상부에서 상승한 공기는 바깥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때문에 중심기압이 낮아져 주변으로부터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밀려들어 온다. 이때 유입되는 공기는 해양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아 되먹힘 구조가 완성된다. 태풍이 차가운 바다나 육지로 이동하면 수증기 공급이 어려워져 힘을 잃고 소멸한다.
태풍 안에서 응결된 수증기는 엄청난 비로 내린다. 허리케인 하비는 텍사스와 루이지애나를 넘나들며 6일 동안 육지 위에 123조L의 비를 뿌렸다. 소양강 댐을 42번 채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온실가스는 지구에 들어온 태양열 일부가 우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막아 열을 포획하여 기온을 상승시킨다. 기온이 상승하면 그 열이 바다에 흡수되어 수온을 상승시킨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수면 온도는 전 지구적으로 0.5℃ 상승하였다.
더 따뜻해진 바다는 더 많은 증발로 더 많이 수증기를 대기에 공급한다. 해수면 온도 0.5℃ 상승으로 대기 안 수증기 함량이 대략 3% 증가한다. 더 많아진 수증기는 더 강력한 태풍을 만든다. 게다가 따뜻한 대기는 더 많은 수분을 담을 수 있어 더 많은 비를 내릴 수 있게 한다.
태풍은 엄청난 양의 비와 함께 강한 바람이 특징이다. 해수면 온도가 1℃ 높으면 최대풍속은 초속 약 8m 강해질 수 있다. 지난해 ‘네이처’ 지구과학 분야에 실린 웨이 메이(Wei Mei) 연구에 따르면, 북서 태평양 태풍은 1977년 이래 평균 12∼15% 강해졌다고 한다. 태풍 강도가 15% 강해지면 파괴력이 50% 증가한다. 태풍 피해는 풍속이 아니라 풍속의 세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태풍은 폭우, 강풍과 함께 폭풍 해일로 피해를 준다. 태풍은 기압이 낮으므로 해수면을 누르는 힘이 약해 해수면이 상승한다. 상승했던 바닷물은 태풍 중심이 이동하면 낙하되어 그 진동으로 폭풍 해일이 일어난다. 폭풍 해일은 저지대 연안 지역을 침수시킨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해양 열팽창으로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이 약 20㎝ 상승했다. 이 해수면 상승은 폭풍해일의 피해를 더욱 악화시킨다.
2013년에 발표된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 5차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해수면 온도 상승에 따라 강한 태풍(최대 풍속 59m/s 이상)의 발생 빈도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전체 발생 빈도는 강한 태풍이 늘어나는 만큼 약한 태풍은 줄어들어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금까지 관측된 태풍의 변화 경향과 비슷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태풍 발생 지역에서는 저기압성 회전이 다소 억제된다. 이는 태풍 에너지 공급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발생 빈도를 증가시키지 못하게 작용한다.
탄소 배출이 태풍 강하게 해 피해 더 늘려

이처럼 태풍 피해는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준다.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아 입게 될 손실과 비교하여 미리 준비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태풍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하는 우리나라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 탄소를 무료로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탄소 배출은 태풍을 강하게 하고 이로 인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와 결국 내야 하는 비용이 된다. 앞으로 탄소 배출량을 더욱 줄이고 기후변화에 미리 적응해야 한다. 이 예방책에는 더 이상의 선택이 없다. 또 다른 선택은 고통만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 김기림은 1935년에 발간한 ‘기상도’에서 휘몰아치며 지나가는 태풍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울과 질투와 분노와 끝없는 탄식과 원한의 장마에 곰팡이 낀 추근한 우비를 홀랑 벗어 버리고 날개와 같이 가벼운 태양의 옷을 갈아입어도 좋을 게다.” 태풍이 지나간 후 피해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깨끗한 공기와 푸른 하늘로 산뜻함을 맞이하려면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을 선택해야만 한다.
태풍 루사와 매미, 누리와 무지개로 개명

연세대 대기과학 박사. 국립기상연구소 지구대기감시센터장, 지구환경시스템연구과장, 기후연구과장 역임. 미국 지구시스템과학원 지구대기감시연구소 탄소순환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