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담금 덫에 걸린 재건축·재개발 (上) ◆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1-3구역을 재개발하는 `북아현 e편한세상`은 6개월째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가 최근 가까스로 재개됐다. 2009년 사업 시작 때만 해도 내 집 마련 꿈에 부풀었던 조합원들이 올해 초 가구당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5억원이나 추가분담금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난 2월 조합장을 해임했고, 4월 열릴 예정이던 관리처분계획변경 총회도 무산되는 등 수차례 홍역을 치렀다.
재개발ㆍ재건축 업계가 추가분담금 공포에 휩싸였다. 왕십리 아현 등 강북 뉴타운에서 터졌던 추가분담금 폭탄이 최근 개포주공2ㆍ3단지, 개포시영 등에서도 분담금 규모가 확정되면서 강남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도한 분담금 폭탄에 주택시장을 근근이 이끌어가던 강남 재건축마저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최근 사업시행인가를 통과한 재건축 단지가 공개한 추가분담금을 보면 1년 전 추정치 대비 가구당 최소 5000만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늘었다.
추가분담금이 급증한 것은 그동안 사업 지연 등으로 금융 비용이 대규모로 발생했고, 아파트 고급화 경쟁으로 공사비가 늘어난 게 1차 원인이다. 여기에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사업시행인가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공적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도 분담금 폭탄을 불러왔다.
10일 매일경제신문이 개포시영 재건축 단지 사업비 명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역난방 공사비 △광역교통시설 부담금 △학교 관련 부담금에다 1년 전만 해도 없었던 △저소음 도로 포장 △태양열전지 △근린공원 리모델링 비용이 발생해 총 322억원에 이르는 공적기여 부담이 발생했다.<이 단지는 또 용적률 증가분에 따라 소형 주택 120가구를 지어 3.3㎡당 500만원 수준에 시에 팔아야 한다. 이로 인한 기회비용 손실이 792억원이다.
추가분담금 중 30%가량이 이 같은 공적기여 부담에서 발생한다.
◆ 분담금 덫에 걸린 재건축·재개발 (上) / 재건축 투자 수익은 ◆
서울 강남구 주요 재건축 투자수익 성적표를 보면 현재와 같은 집값 수준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정기예금 수익률보다 못하다.
개포주공2단지 전용면적 25㎡(옛 7.5평)를 현재 매매가인 4억3500만원에 사서 전용 59㎡(24평)를 분양받을 때 추가분담금으로 2억8500만원을 내야 한다. 조합 설립 때인 1년 전보다 6900만원이나 늘었다. 현재 매매가 4억3500만원과 추가분담금 2억85000만원을 더한 총투자액은 7억2000만원이다.
주변 랜드마크급 대단지인 `대치아이파크` 같은 평형 시세만큼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가정할 때 총투자수익률은 6.67%며 입주까지 최단 4년을 잡으면 연 수익률은 1.67%로 2%에 못 미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금융 비용이 있거나 투자 기간이 길어지면 수익률은 더욱 낮아진다.물론 투자수익률이 높은 일부 단지도 있다. 반포동 신반포1차(아크로리버파크)는 전용 73㎡(28평) 소유주가 전용 84㎡(34평)를 분양받으면 매매가격 16억(작년 기준)에 환급금 4억4030만원을 받아 총투자액이 11억5970만원이다.
바로 옆에 있는 `래미안퍼스티지` 같은 평형만큼 가격이 오른다면 예상 매매가격이 14억2800만원이므로 투자 수익 2억6830만원을 거두게 된다. 총수익률은 23.14%며 작년 8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뒤 2016년 8월 입주이므로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수익률은 7.71%에 달한다.
개포시영과 주공2ㆍ3단지도 환급금을 돌려받는 평형을 선택하면 연 수익률은 5% 이상을 찍는다. 물론 침체를 겪었던 주택 시장이 되살아나면 재건축 투자 수익률이 덩달아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상욱 우리은행 부동산팀장은 "강남 아파트값 상승세와 사업기간, 일반 분양 흥행 여부 등에 따라 투자 수익률은 오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LTVㆍDTI 규제 완화로 최근 강남 재건축 단지 아파트값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정부에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분양가 상한제 탄력 운용 등 부동산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이 호재다.
특히 강남 아파트값이 오른다면 재건축 단지 투자 수익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아파트값이(전용 59㎡ 기준) 현재 3.3㎡당 3000만~3200만원 선에서 3400만~3500만원 수준으로 오르면 개포주공2단지 전용 24㎡ 연 수익률은 4%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
◆ 분담금 덫에 걸린 재건축·재개발 (上) / 추가분담금 실태 ◆
"구청에서 갑자기 하수처리시설을 만들라고 하더군요. 그 비용만 최소 60억원이 추가됩니다. 인근 학교에선 공사장에서 먼지가 난다고 전 교실에 환기시설에다 에어컨을 달아 달라고 합니다."(A조합장)
재건축 사업 추진 과정에서 추가분담금이 늘어나는 이유는 시ㆍ군ㆍ구청 등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학교 등 인근 공공기관들과 사업시행인가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공적 부담이 크다. 과거엔 조합장 횡령 등 `사고`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이 같은 부조리 관행은 많이 사라졌다. 사업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금융 비용 또한 숨어 있는 폭탄이다. 조합이 초기에 가정하는 금융 비용은 전체 사업비 대비 10%가량이다. 사업 초기에 조합 설립에서 청산까지 보통 3~4년을 가정해 금융 비용을 산정한다. 그러나 실상은 완전 딴판이다. 현실에서는 최소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늘어지는 사례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일단 사업을 따고 보자"는 식인 건설사 수주전도 한몫한다. 사업을 따기 전엔 최저가 공사비를 써내지만 옵션을 추가하면서 시공비를 올린다는 얘기다. 통상 건설사들은 재건축 추진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수주를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고 조합은 보통 2~3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공사비, 주택 품질, 각종 서비스 혜택 등을 비교해 시공사를 결정한다.
건설사들은 사업 수주를 위해 보통 수주전에서 최대한 저가 공사비를 제시한다. 그러나 일단 시공사로 선정된 후엔 태도를 바꾸기 일쑤다.
최근엔 또 다른 숨은 폭탄마저 터졌다. 조합원 중 집을 받는 대신 현금으로 받고 아예 사업에서 빠지는 현금 청산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이나 지자체, 건설사 등에서 이 같은 숨은 폭탄을 경고해 주는 곳은 없다.
◆ 분담금 덫에 걸린 재건축ㆍ재개발 (下) / 부동산 과열당시 대못 규제, 지금은 걸림돌 ◆
최대 3억원까지 늘어난 추가 분담금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된 서울 왕십리뉴타운3구역 현장. [이충우 기자]
재건축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되던 시대는 끝났는데 각종 분담금 부담과 규제는 그대로 남아 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분담금 폭탄으로 수익성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서울 곳곳에서 재건축조합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와 부담이 부동산 시장을 옥죄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A아파트 재건축조합장 B씨는 11일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서울시에서 표준건축비만 계산해 1억2000만원에 가져가서 4억~5억원을 받고 임대를 내준다"며 "이러니 재건축사업에서 수익이 날 리가 없다"고 성토했다.
조합 설명에 따르면 서울시는 재건축을 하면서 용적률을 높일 경우 법적 상한과 정비계획 차이의 50% 이하를 소형 임대주택으로 짓게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임대주택을 가져갈 때는 3.3㎡당 500만원 선, 인근 시세의 5분의 1도 안 되는 표준건축비만 준다. 땅값은 인정을 안 해주는 것이다.
B씨는 "재건축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서울시에서 임대주택을 땅값까지 쳐서 시세의 70% 수준에는 사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C아파트 재건축조합장 D씨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서울시를 방문했다가 말문이 막혔다.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 측에서 사업승인 인가 조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려면 단지 옥탑에 태양열전지를 설치하고, 친환경 LED 전등을 75% 이상 시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인근 초등학교 앞 도로를 저소음 포장재로 포장하라는 조건도 추가됐다. 서울시는 또 공원 조성과 관련해 공공 기여 명목으로 재건축과는 전혀 무관한 에코브리지 건설 등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근린공원을 리노베이션해주는 조건으로 간신히 통과됐다. 서울시 요구를 맞추는 과정에서 사업비가 240억원이나 뛰었다. 가구당 1200만원이다. D씨는 "강남 재건축이 이 정도인데 인프라스트럭처가 부족한 강북 뉴타운 재개발은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조합원 분담금 중 공공이 가져가는 공적 부담 비율이 강남 재건축에서는 30%, 강북 뉴타운 재개발은 45%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은 재건축 단지가 정비계획 수립 당시 용적률보다 많은 법적 상한 용적률을 적용받을 경우 증가분의 30~50%를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주택으로 건설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서울시는 조례에 최소치인 30%가 아니라 최대치인 50%를 소형 임대주택으로 짓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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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이 소형 주택을 공공임대주택 표준건축비로 매입해 임대로 공급하는데 조합에 따라서는 수백억 원씩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조합은 인허가를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시 정책을 따르지만 피해는 조합원에게 돌아간다.
강남의 한 재건축조합 이사는 "법에서 정한 30%만 임대로 공급하면 600억원 정도 부담을 지게 되지만 50%를 공급하게 되면 1000억원으로 부담이 늘어난다"며 "기부채납하는 땅까지 합치면 15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모두 추가 분담금 상승으로 이어지게 돼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재개발 용적률 제한을 300%까지 완화하고 임대주택 건설 비율도 낮춰 사업성을 개선하는 정책을 내놨다. 주택 가격 상승기에 도입된 초과이익환수제 폐지와 주택 미분양자 현금 청산 시기 연장 등 방안도 나왔지만 관련 법률은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처럼 과거 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제도가 침체기인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게 문제"라며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꼭 폐지안을 통과시켜 시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분양가상한제도 재건축 사업성을 10%가량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소형 평형 의무비율을 탄력 적용하고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풀 수 있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재건축 사업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공적 부담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게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재건축사업 이익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지자체가 기부채납을 과도하게 요구해 사업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 분담금 덫에 걸린 재건축ㆍ재개발 (下) ◆
`수직증축 리모델링`이라고 해서 추가 분담금 폭탄의 예외는 아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지난 4월 25일부터 허용됐지만 재건축ㆍ재개발보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오히려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가구 수 증가를 전제로 하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3.3㎡당 분양가가 2000만원 이상 돼야 조합원들의 분담금을 낮추고 시세 차익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다.
권영덕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비슷한 면적의 아파트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때 조합원 분담금이 수평증축 리모델링 때보다 전반적으로 낮다.
하지만 수직증축 리모델링도 사업 초기 추정 분담금이 사업 막바지에 크게 늘어날 위험성을 똑같이 내포하고 있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조합 비리 등 근절에 도움이 되는 공공관리제가 현행 법률상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적용되지 않는다. 조합 설립 후 시공사를 바로 선정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수직증축 리모델링 과정에서 조합 측이 건설사에 휘둘릴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놓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 때문에 재건축 공공관리제를 의무제에서 선택제로 바꾸려는 정부 움직임과 반대로 함진규 새누리당 의원은 수직증축 리모델링에 공공관리제를 적용하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지난 3월 국회에 제출했다.
◆ 분담금 덫에 걸린 재건축ㆍ재개발 (下) / 분담금 갈등 `근본적 차단` 어떻게 ◆
서울 성북구 돈암5구역을 재개발한 `길음역 금호어울림`은 분담금 폭탄을 원만히 해결하고 일반분양까지 마친 단지다. 이 단지는 5개월간 공사가 중단되는 등 갈등이 극심했다. 그러나 시공사와 조합이 사업이 지연될수록 위기가 더 커진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한발씩 양보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 5월 일반분양에서 평균 2.23대1의 경쟁률로 전 가구가 순위 내 마감했다.
추가 분담금 문제를 해결하고 사업을 마친 사업장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시공사와 조합이 조금씩 양보하거나 △입지 등이 워낙 좋아 프리미엄으로 분담금을 상쇄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분담금 갈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2012년 일반분양 2000여 가구를 포함해 3160가구 대단지를 모두 판매한 부산 만덕 주공아파트 재건축(현 부산 백양산 동문굿모닝힐)은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한 대형 건설사가 10년을 질질 끈 끝에 시공사 계약을 해지하고 빠진 자리를 중견 건설사인 동문건설이 들어갔다. 동문건설은 조합에서 조합원 분담금을 기반으로 일반분양가를 정하는 통상적인 방식 대신 현실 가능한 일반분양가를 정한 뒤 조합원 분양가와 무상지분율(비례율)을 정했다. 조합은 무상지분율을 양보해 분담금 인상을 받아들였고, 대신 동문건설은 공사비를 크게 양보했다.
서울시는 2011년 6월부터 재건축ㆍ재개발 추가 분담금 사전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사업 기간 중 분담금이 급격히 증가하는 경우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실제 각 조합이 입력하는 설계비 공사비 보상비 외주용역비 등 50여 개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합원별로 분담금이 산출되지만 조합 설립 단계에서 제시되는 분담금과 분양 신청 단계, 관리 처분 단계에서 제시되는 분담금에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도 추정 분담금이 물가상승률과 금융비용, 이자 부담 등을 감안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분담금과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추정 분담금은 `분양률 100%`를 전제로 산출되는데 실제 올해 강남과 강동에 분양한 재건축 단지에서 상당수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추가 분담금 폭탄을 막기 위해서는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의 추정 분담금 검증제도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